본문 바로가기
메뉴 보이스
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치밀한 결벽증 환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허연 기자
입력 2020.10.17 00:09  
  • 공유
  • 글자크기
헤로도토스 (BC484 ~ BC425)

조사와 증거를 통해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다
역사를 실증적 학문으로 끌어올린 그리스 이야기꾼
이미지 크게보기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페르시아의 속주였던 이오니아 출신 이야기꾼 헤로도토스였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경 직접 이집트를 답사했다. 성격이 치밀하고 결벽증과 탐구벽이 있었던 그는 무엇이든 직접 보고 듣고 싶어 했다.

그는 이 답사에서 이집트 문명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 '나일강의 범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따로 비료를 쓰지 않아도 퇴적물 성분 때문에 나일 삼각주에는 늘 풍년이 들었고, 범람이 지난 후 지워진 땅의 경계를 찾기 위해 측량과 기하학이 발달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삼각주 지역이 그리스 문자 '델타'와 닮은 데서 착안해 같은 이름을 붙인다.

그는 또 나일강 범람의 원인도 찾아낸다. 당시만 해도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범람을 '신이 결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증발됐던 강물이 서쪽으로 갔다가 하지(夏至)를 전후해 비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강물이 넘친다는 주장을 펼친다.


2500년 전 나일강 범람 원인을 대류현상에서 찾아냈다니 놀라운 일이다.

후세 사람들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왜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까.

이미지 크게보기
헤로도토스의 대표적인 저술은 'Histoty(역사)'다. 'History'는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온 말인데 '연구나 탐사를 통해 얻은 지식'이라는 의미다. 헤로도토스가 탐사를 통해 얻은 지식을 담은 보고서의 제목을 'History'라고 붙이면서 'History=역사'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가 전설이나 신화를 벗어나 학문이 된 순간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전체 9권짜리 방대한 책이다. 책은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벌였던 페르시아 전쟁을 주로 다룬다. 그는 책을 쓰기 위해 10년 동안 지금의 시리아에서 이탈리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이집트까지 답사 여행을 떠난다. 이렇다보니 책에는 전쟁이야기는 물론 당시 각 지역의 습속과 문화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지리보고서이기도 한 셈이다.

헤로도토스가 살았던 시대 대부분의 기록은 서사시였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운문이 아닌 산문에 신화가 아닌 팩트를 담은 역사 기록을 남긴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들이 이룬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지 않도록 하고, 또 헬라스인들과 이방인들이 보여준 위대하고 놀라운 행적들과 전쟁을 벌인 원인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하고 싶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지배를 받는 지역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인 특유의 분방함과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문명사를 바꿔버린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현장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는 뱃사공에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전쟁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분석해 '역사'라는 책을 만들었다.

헤로도토스는 조사와 증거를 통해 지나간 역사적 사건을 저술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가 '아버지'일 수 있는 이유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