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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시가 있는 월요일] 새벽 첫 기차

허연 기자
입력 2020.10.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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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행신역으로 설 기차표 끊으러 가는데
첫 기차가 지나간다
거대한 환형동물처럼.

따뜻한 대화 같기도
무슨 열린 페이지 같기도 한
창문들이 지나간다
한 줄의 섬광처럼.

꽝 꽝 언 들판 위로
쩍 들러붙은 새벽과 밤을
야금야금 떼어 놓으며 가는
따뜻한 혀 하나

- 문성해 作 <첫 기차에는 창이 많다> 중


어두운 새벽 첫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새벽열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모두 잠들어버린 세상을 가르고 지나가는 살아 있는 동물 같다. 어떨 때는 사연과 그리움과 미움을 싣고 달려가는 이야기 상자 같기도 했다.

시인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첫 기차의 창을 보며 '열린 페이지'라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렇다. 새벽열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고, 열차의 창문은 펼쳐져 있는 이야기책의 한 페이지일지도 모른다. 오늘 새벽에도 셀 수 없는 사연을 담은 첫 열차가 섬광처럼 고향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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