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보이스
매경칼럼

[매경데스크] 반복되는 사모펀드의 비극

노영우 기자
입력 2020.10.19 00:09  
  • 공유
  • 글자크기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외환위기 교훈 악용한 사례
처벌과 진상규명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펀드로 촉발됐다. 당시 미국 JP모건은 SK증권을 포함한 한국 기업들에 태국 바트화와 연계한 펀드 상품을 팔았다. '바트화 가치가 유지되면 고수익을 보장하고 바트화값이 하락하면 손실을 떠안는다'는 조건이었다.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태국 바트화가 하락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해외펀드에 무지했던 우리 기업들은 이 상품을 별 의심 없이 덥석 물었다. 하지만 JP모건의 속내는 달랐다.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태국 정부가 변동환율제로 바꿀 것이고 바트화는 폭락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했다. 외환시장은 JP모건의 전망대로 흘러갔고 우리 투자기업은 쪽박을 찼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해외펀드와의 악연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도 계속됐다. IMF 고금리 정책과 구조조정으로 우리 은행과 기업들이 무너지자 그 자리를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채웠다.


칼라일 뉴브리지캐피털 론스타 등 국제사모펀드들은 현란한 금융기법은 물론 각종 로비를 총동원하며 한국 시장을 유린했다. 시장을 선진화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들에게 선진 금융기법을 배웠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대신 가격을 후려쳐 헐값에 사들여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가볍게 한 후 비싼 값에 팔아넘기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사모펀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금융시장을 키우고 펀드를 육성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그때였다. 시장의 규칙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배우는 것이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날렸고 금융시장을 지키기 위해 160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도 들어갔다. 희생은 컸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2020년 들어 펀드의 비극적 역사가 반복됐다. 이번엔 국내 펀드가 일반 투자자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년 전 학습효과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부메랑이 됐다.


은행들이 팔았던 해외금리형파생결합펀드(DLF)는 과거 JP모건이 팔았던 바트화 연계 펀드를 연상시킨다. 해외채권 금리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금리가 하락하면 막대한 원금손실을 입을 수 있는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이라는 구조도 유사하다. 투자자에게 위험은 거의 알리지 않고 고수익만 강조한 것도 판박이다. 역시 현실에선 금리가 하락했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라임과 옵티머스로 대표되는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시장의 규칙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처음엔 부실펀드를 운용사와 판매사가 감추고 투자자들에게 판 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펀드를 만들 때부터 펀드를 둘러싼 많은 기관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감독당국과 청와대 정치권까지 로비의 대상이 됐고 실제 로비가 이뤄진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펀드회사가 기획하고 판매사, 감독기관과 일부 투자자까지 동원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하고 착복한 사건이다.

곳곳에서 허점도 발견된다.


정부는 사모펀드의 설립, 운용,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프로선수들의 무대에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규제를 완화하면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금융당국은 무슨 이유에선지 감독을 강화하지 않았다. 사모펀드의 타짜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헤집고 다니며 아마추어 투자자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학연 지연 등 인맥을 동원한 각종 로비를 통해 감독당국의 눈과 귀를 가리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았다.

'자본주의 금융의 꽃'으로 알았던 펀드가 독버섯이 돼 정치·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펀드의 역사는 20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 모두 비극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확실한 진상규명과 이를 통해 시장 규칙을 바로세우지 않는다면 훗날 세 번째도 비극으로 기록될 것 같다.

[노영우 금융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