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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필동정담] Voice of Korea

김기철 기자
입력 2020.10.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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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0년 소비에트 붉은 제국의 변방에서 두 개의 균열이 동시에 진행됐다. 첫 번째 균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다. 크렘린이 지지하는 무함마드 타라키 대통령이 쿠데타로 실각하고 믿을 수 없는 하피줄라 아민이 집권한 것이다. 두 번째 균열은 폴란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에서 시작됐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두 개의 균열을 모두 무력으로 막으려 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주저없이 침공했다. 폴란드를 향해서는 소련군 15개 사단, 체코군 2개 사단, 동독군 1개 사단을 출동 준비까지 시켰지만 끝내 진군 명령은 내리지 못했다. 브레즈네프가 폴란드를 향해 출동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세 명의 국제적 거물이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외교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무장관 에드먼드 머스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다.


이들은 모두 폴란드 출신이었다. 긴장이 고조된 순간 요한 바오로 2세와 브레진스키는 폴란드어로 통화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그리고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대통령을 움직여 브레즈네프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게 했다. "폴란드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이 동원되면 양국 관계는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 외교안보라인의 투톱이 모두 폴란드인이었기 때문에 브레즈네프로서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슬프게도 아프가니스탄에는 브레즈네프를 멈춰 세울 네트워크가 없었다.

얼마 전 우리도 해외 한인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하는 경험을 했다. 독일 베를린시에서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현지 한인단체인 코리아협의회 등의 노력으로 철회를 이끌어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부인 김소연 씨의 역할도 있었다.

국제사회에 우리의 목소리(Voice of Korea)를 전해줄 존재는 소중하다. 11월 9일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낭보를 기다리는 이유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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