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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겨울비가 내렸다. 파로흐자드를 읽는 밤이었다.

허연 기자
입력 2020.11.21 00:09   수정 2020.11.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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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그 파로흐자드 (1935~1967)

"존재의 목소리를 외쳤다. 슬프게도 나는 '여자'였다"
불꽃처럼 살다간 이란 천재 시인이자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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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란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책을 읽었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한계가 빤히 보이는 폭 좁은 상상력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권선징악 같은 뻔한 주제, 종교와 정부에 충성을 종용하는 내용들은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문득 한 사람이 그리워졌다. 포루그 파로흐자드. 이란의 독보적인 여성 시인이다. 이란 현대시인들의 문집을 보면서 파로흐자드가 얼마나 뛰어난 시인이었는지, 그가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벽을 뛰어넘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충분히 돋보여도 되는 존재였다.

파로흐자드가 우리에게 알려진 건 이란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가 개봉되면서부터였다. 이란 시골 쿠르드족 마을을 배경으로 한 할머니의 전통 장례식을 촬영하러 온 다큐팀의 좌충우돌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답게 작품성도 뛰어났지만 특히 묵시록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이 압권이었다.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한 부분을 옮겨보자.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 내 손에 얹어달라 /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의 입술을 /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에 맡겨 달라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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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파로흐자드는 열일곱 살에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려고만 했다.


남편은 히잡을 벗고 파마를 한 그녀를 용납하지 못했고, 그는 결국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긴 채 이혼을 당한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파로흐자드는 강력한 페미니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너를 위한 시 - 아들에게'라는 작품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면서 비웃는 그 부끄러운 낙인 / 그것은 바로 나였다 / 존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는 외쳤다 /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여자'였다 / 네 순박한 두 눈이 / 시작도 없는 이 불행한 '책'을 읽어 나갈 때 / 뿌리 깊은 반란이 / 모든 노래의 심장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란 사회가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 비난과 협박에 시달리던 그녀는 정신쇠약으로 병원 신세를 졌고, 도망가듯 유럽으로 떠난다.


유럽에서 영화를 배운 파로흐자드는 1962년 다큐 영화 '그 집은 검다'로 뉴시네마의 기수로 등장한다. 곧이어 펴낸 시집 '또 다른 탄생'은 이슬람 문학의 상투적인 전통을 한 방에 무너뜨린다.

하지만 신이 질투를 한 걸까. 그녀는 1967년 교통사고로 서른세 살의 짧은 생을 마친다.

한국에 딱 한 권 번역돼 팔리고 있는 그녀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영적인 그녀의 눈이 나를 노려본다. 하도 읽어서 귀퉁이가 닳았다. 밖에는 겨울비가 내린다.

"훗날 비바람이 내 묘비에서 내 이름을 부드럽게 씻어 주리라." ('훗날' 중)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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