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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노원명 칼럼] 부산 사람들이 파블로프 실험 대상인가

노원명 기자
입력 2020.11.22 09:10   수정 2020.11.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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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시민 수준을 따라간다. 시민보다 수준이 낮은 정부는 높은 수준의 정부로 대체되고 정부 수준이 시민보다 월등히 높으면 낮은 수준의 정부에 밀려난다. 고로 낮은 수준의 정부를 막으려면 시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선진국은 시민적 덕성을 고양하는 정책·교육 시스템이 작동하고 정부가 국민을 타락시키지 않는 나라다. 낮은 수준의 정부가 국민을 미몽에 빠뜨리는 정책으로 표를 얻으면 그 나라는 필히 더 낮은 수준의 나라가 된다.

여권은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으로 부산 사람들을 시험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이 노무현 정부때였다. 그때 이후로 약 20년간 대선, 총선, 지방선거 가릴 것없이 부산경남에선 신공항과 표를 연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부산 사람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덕도 신공항을 원한다. 이명박 정부때인 2011년 백지화됐던 것이 박근혜 정부때 다시 살아나 2016년 김해신공항 확장으로 귀결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가덕도 재추진을 공약으로내건 여당 부산시장 후보 오거돈이 당선됐다. 그 오거돈이 성비위를 저질러 치러지는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프레임이 실정 프레임을 덮어 버렸다.

이것은 일종의 파블로프 조건반사 실험을 보는것 같다. 파블로프의 개는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 역대 정부와 지역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신공항' 혹은 '가덕도' 카드로 부산 시민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덕도' 소리만 나와도 부산 시민들은 반응할 것이므로.

지금 부산 사람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다. 가덕도 노래만 틀어주면 부산은 다른 노래는 생각도 못할 것이라 여긴다. 그걸 가장 믿어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의원들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가 나오자마자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인 하태경 등 부산 지역구 의원 15명 전원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당 지도부는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하느니마느니 하는판에 이렇게 엇박자를 낸다. 그렇게 하면 야당 소속인 자기들도여당이 선물하는 가덕도 신공항에 밥숟갈 얹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착각 참 오지다. 여당이 차린 밥상이라는 걸 다 아는데 야당이 어떻게 숟갈을 얹나. 부산 시민들을 바보로 아나. 그들은 마땅히 "부산 시민 모욕하지 말라"고 지르고 나왔어야 한다. '지금 장난치나. 우리가 파블로프 개냐'고 따지고 들어야 한다. 평소 '포퓰리즘' 비판을 입에 달고 살던 이들이 자기 지역구에 들이닥친 쓰나미급 포퓰리즘에는 제일 먼저 줄을 서고 있다. 야당 노릇 한번 비굴하게 한다.

정부는 시민의 덕성을 고양할 의무가 있다. 최소 타락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이 정부는 가덕도 카드를 시시때때로 꺼내들면서 부산 시민의 국가공동체 의식과 절제심을 지역 이기주의와 불복으로 오염시켰다. 되는 나라는 정부가 높은 시민사회 수준을 따라가고 안되는 나라는 낮은 정부 수준에 맞춰 시민사회가 덩달아 낮아진다.


부산에만 책임을 물을수도 없다. 지난 4·15 총선때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그야말로 '전국민적' 호응을 불러 일으켰고 여당은 압승했다. 정치학자들은 이것을 정부 수준에 맞춰 시민사회 수준이 낮아진 사례로 분류할 것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때는 '따블', 내후년 대선때는 '따따블' 현금지원이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선이 기본소득 경연장이 될 것이란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총선때 크게 당한 야당은 여당보다 더 크게 지를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다. 시민사회 수준은 바닥을 모르고 뚝뚝 떨어질 것이고 정부 수준은 그에 맞춰 또 낮아질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동반 타락에 가속도가 붙는다.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딱 하나다. 시민사회가 자기 성찰과 통제력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이라는 잡초는 표를 주지 않으면 말라죽는다. 건강한 묘목이 자라듯 시민사회의 고양된 정신을 따라 정부 수준이 올라오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동반 타락이 동반 상승으로 반전한다.


그런데 반전 계기를 만드는게 무척 어렵다. 역사라는 원형 회전판의 화살표는 부산을 향하고 있다. 정치권은 부산 시민들을 파블로프 개 취급하며 희롱해 왔다. 그 잘난 가덕도 카드로 부산인의 자존심을 맞바꾸려 한다. 부산 시민들이 자존심을 지키려면 내년 보궐선거가 가덕도 프레임으로 치러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외쳐야 한다. "우리가 개가."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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