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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한국 자본주의 판이 바뀌고 있다 [Big Picture]

장경덕 기자
입력 2021.01.14 00:06   수정 2021.01.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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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3000시대
자본주의는 야성적 충동을 부추긴다
하지만 창조적 파괴는 더디다

기업이 시속100km로 달릴 때
정치와 법이 시속 10km로 움직인다면
시장의 스트레스는 폭발할 것이다

혁신의 용광로에 불지펴야
거품붕괴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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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골이 깊었으나 크게 반등해 한국의 저력을 보여줬던 증권시장이 소의 해인 2021년에도 힘찬 모습이 되길 기대한다.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앞 황소상 뒤로 자동차의 궤적이 흘러가고 있다. [김호영기자] 여의도는 환상의 섬이다. 당신이 타임 슬립으로 30년 전 여의도에 떨어졌다고 해보자.
1991년 1월 14일 증시는 미국 의회의 걸프전 승인 소식에 폭락세로 출발했다. 당시 코스피는 600대에서 널뛰기했다.
주식 시가총액은 72조원에 불과했다. 아직 파란 눈의 투자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당신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 온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주가는 다음날부터 이틀간 폭락했다 이틀간 폭등했다. 3년 새 상장사 30여 개가 쓰러졌다.
그해 몸값이 138% 뛴 한국이동통신은 증시의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한 세대 후에 누구나 손안의 슈퍼컴퓨터로
지구 반대편 전기차 업체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되리라고 상상한 이들은 몇이나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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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신은 알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혹독한 담금질을 거칠 것이다. 금강산 주가(1638)와 백두산 주가(2744)는 결국 현실이 될 것이다.


그새 숱한 기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다. 누군가는 엄청난 성공 신화를 쓰고 누군가는 창조적 파괴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보자. 당신은 또 다른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거대한 판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시만 봐도 알 수 있다. 팬데믹 위기에도 주가는 3000 고지에 올랐다. 공포와 탐욕의 도가니에서 뭔가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바뀐다는 말인가. 이 가속의 시대에 변화의 방향이라도 가늠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당신은 미래로 타임 슬립할 수 없다. 지난 한 세대 역사를 꿰고 있더라도 앞으로 한 세대 일을 내다볼 수는 없다. 변화는 선형이 아니다. 일정한 주기로 똑같이 되풀이되지도 않는다. 미래는 흔히 매몰차게 우리 기대를 저버린다. 그래도 역사는 중요하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모래알처럼 쌓였다 언젠가 사태를 일으킬 것이다. 격변은 작은 모래알 하나가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경사가 급해져 임계상태에 이르면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거대한 지진도 처음에는 지각의 작은 뒤틀림에서 시작된다. 임계상태에 있는 시장은 언제든 투기의 광기와 붕괴의 패닉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금 임계상태에 이른 것들은 무엇일까. 실마리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역사를 돌아보자. 여기 그래프가 하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가와 기업 이익, 금리로 자본시장과 실물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지난 13년은 유동성 홍수의 시대였다. 중앙은행들의 파격적인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QE)로 국채 수익률은 제로나 마이너스가 됐다. 3년 만기 한국 국채 수익률은 금융위기 당시 6%에 가까웠지만 팬데믹 위기가 닥친 지난해에는 1% 아래로 떨어졌다. 그럴수록 주식의 매력은 돋보였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기업 이익이나 배당금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이다. 할인율(금리)이 낮을수록 현재 가치는 높아진다. 기업의 금융 비용은 줄고 이익은 늘어난다.


주식수익률(earnings yield)은 주식이라는 거위가 낳는 알이다. 기업 순익을 주가로 나눈 값으로 주가수익배율(PER)의 역수다. 주식의 시세 차익이 아니라 내재적인 수익성을 나타낸다. 그래프 수익률은 1년간 예상 순익을 주가로 나눈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줄곧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2018년에는 13%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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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주식과 채권 간 수익률 격차다. 투자자들은 무위험 자산인 국채보다 위험을 안고 사는 주식 수익률이 더 높기를 기대한다. 위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자산 간 수익률 갭으로 가늠한 위험프리미엄은 금융위기 후 10년간 오름세였다. 1990년대 주식 위험프리미엄은 줄곧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에는 딴판이 됐다. 10%를 웃돌던 국채 수익률은 5% 안팎으로 떨어졌다. 주식 위험프리미엄은 2000년대 초반 5~10%를 오르내리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2%대로 떨어졌다.

여기서 하나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위험프리미엄이 낮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낮은 수익률에도 기꺼이 위험을 안는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전 투자자들은 기업이 당장 큰 이익을 못 내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주식을 샀다. 그러나 위기 후에는 안전 선호 경향이 뚜렷했다. 위험에 대한 높은 보상을 요구했다. 기업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이익을 늘리는 데 몰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도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주식 위험프리미엄은 2018년 11%까지 올랐다. 그 후 내림세로 돌아서 작년 말에는 6% 중반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주가가 치솟으면서 5%대로 떨어졌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공격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성을 낙관하게 됐을 수도 있다. 수익에 갈급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투기적 매수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 지난 몇 년 새 실세금리가 0%대에 진입한 것은 '이자 소득자들의 안락사'를 의미한다. 안락사를 피하려면 더 위험한 자산에 베팅할 수밖에 없다. 폭등한 집값에 절망한 젊은 세대의 '영끌' 투자도 한몫했다.


그래프를 보면 떨어져 있던 두 지각이 서로를 밀치게 될 것 같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지금 같은 초저금리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금리가 0%대에 마냥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은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 당시 일본처럼 된다는 뜻이다. 경제가 성장의 활력을 되찾으면 금리는 자연스럽게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다.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되살아날 때 공급 부문 애로가 해소되지 않으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 주식 수익률은 기업 이익이 늘거나 주가가 떨어져야 다시 올라갈 것이다. 지진은 스트레스의 축적과 방출로 일어난다. 그 크기와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임계상태의 지각은 결국 격렬하게 몸을 떨게 될 것이다.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그와 어긋나는 현실과 맞닥뜨릴 때 시장의 스트레스는 커질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계를 보자.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국부 총액을 나타내는 국민순자산 통계다. 국민순자산은 토지와 주택, 생산설비를 비롯한 모든 비금융자산에 순금융자산을 더한 값이다(누군가의 금융자산은 다른 누군가의 금융부채이므로 순액만 더한다). 20년 전 국민순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6배였다. 2019년에는 8.7배였다. 땅값과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지난해에는 9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주택 시가총액은 2000년까지만 해도 약 1000조원으로 GDP의 1.6배 수준이었다. 2019년에는 5000조원을 넘어 GDP의 2.7배에 달했다.

국민순자산을 광의의 자본으로 볼 때 그 자본을 바탕으로 창출하는 소득(GDP)은 갈수록 줄어든다. 20년 전 GDP는 국민순자산의 16%였다. 지금은 11%에 불과하다. 국부가 주로 땅값과 집값 상승으로 늘어난다면 그 부는 시멘트처럼 굳어져버릴지도 모른다.

당대 소득에 비해 선대의 부가 더 중요해질수록 불평등도 심각해진다.


우리는 바야흐로 대상속의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처럼 GDP 대비 국부 총액이 늘어날수록, 전체 인구 대비 사망자 수가 늘어날수록, 사망자의 재산이 전체 인구 평균 재산보다 많을수록 당대 소득에 비해 상속 재산의 중요성이 커진다. 팬데믹 이후 인구 변화와 저성장 속 자산 거품으로 불평등은 임계상태로 치달을 것이다.

주가 3000 시대 자본시장은 금융위기 후 잠자고 있던 야성적 충동을 깨운다. 야성적 충동은 개미들의 투기적 광기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기업가의 모험 투자를 촉발하기도 한다. 바로 이럴 때 혁신의 용광로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하면 거품 붕괴의 대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자본주의의 요체는 경쟁과 혁신이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추동하는 체제다. 하지만 정치·사회·환경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이는 체제다. 창조적 파괴의 역량을 분출시키면서 불평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이중 난제다.


혁신은 경제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이뤄져야 한다. 시장과 기업이 시속 100㎞로 달릴 때 그들을 규율하는 정치와 법은 시속 10㎞로 움직이거나 되레 뒷걸음질한다면 스트레스는 폭발할 것이다. 산업화 시대 공장식 교육 체제와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금융 시스템도 파괴적 혁신이 절실하다. 그 혁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자본시장의 낙관론은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팬데믹은 자본주의 변화를 가속화한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체제에서 단 몇 주 만에 혁명이 일어나는 시대다. 애플 시가총액이 1조달러에 이르는 데 42년이 걸렸다. 2조달러까지는 5개월밖에 안 걸렸다. 테슬라 몸값은 포드의 20배를 넘는다. 지금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 시대다. 공장이나 금융이 아니라 창의적인 두뇌가 가장 값진 자본이다. 팬데믹 이후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돌아갈 정상은 이미 파괴됐다. 한국 자본주의는 상전이 순간을 맞고 있다. 앞으로 30년의 변화는 우리 상상력을 얼마나 뛰어넘을까.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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