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김인수의 경영과 사람 사이]LG의 스마트폰 철수와 넷플릭스로 보는 경쟁의 의미

김인수 기자
입력 2021/04/21 10:09
수정 2021/04/21 10:14
##경쟁의 신호 "상대와 달라져라, 네 자리를 찾으라"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했다. 애플·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진 거라는 얘기들이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경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5조 원이 넘는 누적 손실이 아니라, 다만 얼마라도 흑자를 보았다면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경쟁을 '승패'의 관점에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경쟁은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느 곳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기' 역할을 한다. 지금껏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쟁은 LG전자에게 그 시장에 있지 말라고,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라는 신호를 발산해왔다. 드디어 LG전자가 그 신호를 받아들인 것이다.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 등으로 옮겨가겠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온갖 사업을 벌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여러 사업을 두루 잘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경쟁 덕분에 우리는 자신에게 맞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보다 더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기 위한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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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밝힌 지난 5일 서울시내 한 매장에 진열된 LG 스마트폰의 모습. <한주형기자>

# 넷플릭스가 매출의 97% 사업 포기한 까닭

문득 넷플릭스가 기억난다. 1997년 창업한 넷플릭스는 온라인으로 영화 DVD를 판매하고 대여하는 사업을 했다. 초기 매출의 97%는 DVD 판매에서 나왔다. 대여의 비중은 미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존에서 연락이 온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시애틀로 베이조스를 만나러 간다. 넷플릭스를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품었다. 그러나 아마존이 제시한 인수가는 헤이스팅스와 랜돌프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두 사람은 고민에 빠진다. DVD 판매 시장에 아마존이 진출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거 같았다. 아마존은 당시에는 책만 팔고 있었지만, 곧 DVD 판매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아마존은 제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신속하게 배송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회사다.


랜돌프는 “아마존이 뛰어들면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마존과의 경쟁을 생각하니, 넷플릭스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그 경쟁은 넷플릭스에 DVD 판매 시장을 떠나라는 명백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넷플릭스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여 시장'에 집중하라는 신호였다.

넷플리스의 공동 창업자인 랜돌프는 그 신호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책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덴스토리 출판, 이선주 옮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 사업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내는 부분(DVD 판매)을 포기해야 한다고 리드에게 말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날 오후,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아마존의 베이조스를 만난 후 DVD 소매 시장에서는 경쟁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만이 할 수 있고, 차별화할 수 있는 일(DVD 대여)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이후 넷플릭스는 DVD 판매는 아마존에 넘긴다. DVD를 사려는 고객이 있으면 아예 아마존 웹사이트로 보내버린 것이다. 대신 DVD 대여에 집중한다.

다만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경쟁의 신호를 받아들여 우리가 선택하는 곳이 '기름진 옥토'라는 뜻은 아니다. 그곳 역시 피땀 흘려 개간해야 할 '황무지'일 수 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쉽게 과실을 수확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다.

넷플릭스 역시 그랬다. 온라인으로 DVD를 대여하는 시장을 개척하는 건 지극히 힘든 과정이었다. 랜돌프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수천 시간의 노동이 들어갔고, 수백만 달러의 돈을 썼는데, 수백 번의 실험이 실패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해냈다. 연체료를 없애고 월 15.99달러의 '구독 서비스'를 내놓은 게 대박을 쳤다. 요즘은 구독 서비스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구독 시장을 개척하는 혁신으로 넷플릭스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LG전자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하고 닻을 내린 새로운 시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혁신이 없으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LG전자에 가열찬 혁신이 나왔으면 좋겠다.

#비슷해지는 경쟁은 다양성과 공존을 파괴

경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다양성과 공존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마존과 경쟁이 없었다면 넷플릭스는 DVD 판매 사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익의 대부분이 나오는 사업을 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 덕분에 넷플릭스는 차별화를 선택했다. 그 결과, 아마존과 시장에서 공존할 수 있게 됐다. 판매 일색이던 온라인 시장에 '대여'와 '구독'의 비중이 늘면서 시장은 더욱 다양해졌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에 LG그룹과 삼성그룹은 닮은 꼴이었다. 가전부터 휴대폰까지 엇비슷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LG그룹은 계열사인 LG반도체를 통해 반도체까지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경쟁의 압력은 서로를 달라지게 했다. LG그룹은 반도체를 포기하는 대신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 진출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었다. 마찬가지로 LG전자가 스마트폰을 포기하는 대신,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LG와 삼성은 더욱더 달라질 것이다. 이는 곧 다양성을 의미한다. 두 그룹은 서로 다르기에 공존할 수 있다.

비슷하다는 건 죽고 사는 경쟁을 뜻한다.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나 경쟁이라는 게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서로 달라져라. 그래서 각자에게 맞는 자리를 찾으라’는 경쟁의 신호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그 반대로 서로 비슷해지기를 선택한다면, 승자만 살아남는 추악한 경쟁이 되고 말 것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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