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백신 양극화가 초래할 재앙 [매경포럼]

입력 2021/05/04 00:07
수정 2021/05/04 00:53
부자 나라 백신 독점해
저소득 국가 경제 신음
백신 특허 일시 유예로
양극화 고질병 고쳐야
팬데믹도 끝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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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한 사람은 현재 10억명이 넘는다. 지난해 12월 8일 영국이 첫 접종을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돼 세계 인구의 15% 이상이 백신을 접종한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승인한 백신도 90억회분에 육박한다.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발 빠른 대응이 경이롭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 백신의 양극화다. 백신 접종 건수는 늘고 있지만 그 수혜는 미국과 영국 등 고소득 국가에 집중돼 있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를 보면 백신을 접종한 10명 중 8명은 부자 나라 국민이다. 미국은 대형마트만 가도 백신을 구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엔 단 1회분의 백신조차 없는 국가가 수두룩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나라보다 높은 나라에서 25배 빠르게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고, 소득 상위 11% 국가가 세계 백신의 40%를 접종하는 동안 하위 11%는 1.6%만을 사용했다.

백신 양극화는 경제 양극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글로벌 경제 침체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는 다르다. 금융시장 위기가 선진국 경제를 강타했다면 팬데믹은 저소득 국가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각국의 봉쇄 조치로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은 초토화됐고 이주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외화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10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 인구도 코로나19 이후 몇 개월 만에 수천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선진국경제는 2022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만 저소득 국가는 여전히 큰 폭으로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저소득 국가에서 팬데믹이 지속되고 극심한 경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 선진국 경제도 온전하게 회복되기 어렵다. 백신을 무력화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 수석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부자 나라 정책 당국자들이 저소득 국가가 처한 도전을 무시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행동은 없다"고 일침을 놓은 것도 이런 이유다.

코로나19 백신을 일부 국가가 독식하는 어리석은 현실을 꼬집는 우화가 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크릴로프가 쓴 두 편의 우화다. 먼저 '분배'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상인 3명이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해 올린 수익을 나누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한 상인이 수익은 나중에 나누고 일단 불을 끄자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상인이 1000루블을 더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상인도 2000루블을 더 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가서 불을 끄자고 제안했던 상인도 더 받겠다는 근거가 뭐냐고 따졌다. 그렇게 다투고 있는 사이에 그들의 집과 재산은 몽땅 타버리고 말았다. '참나무와 갈대'라는 우화도 팬데믹이 닥쳐오면 아무도 무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한다. 어느 날 참나무가 바로 옆에 있는 갈대에 말한다. "너는 쉽게 흔들리지만 나는 산처럼 당당하게 서서 너를 보호하고 있다.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너는 정말 한심한 존재다."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과 폭우가 몰려왔다. 참나무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뿌리에 힘을 주었고 갈대도 땅에 납작하게 누웠다. 그러나 폭우가 거세지며 땅이 무너졌고 참나무도, 갈대도 모두 뿌리째 뽑혀 나갔다.

부자 나라들이 백신을 더 갖겠다고 다툼을 벌이고 가난한 나라의 어려움을 외면하면 또 다른 위기가 올 것이다. 백신 특허를 일시적으로 유예해서라도 충분한 양을 생산해 저소득 국가에 공급하는 게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는 길이다. 예상할 수 있는 재앙을 피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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