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늙어가는 그녀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1/11/27 00:07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865~1939)

"공중의 새여! 나는 그대들의 사랑노래를 견뎌야 하는가?"
평생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아일랜드 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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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어느 날 아일랜드 더블린.

큰 키에 빼어난 미모를 지닌 한 여성이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집을 찾아온다. 명망 있는 변호사였던 예이츠의 아버지를 만나 독립운동 지도자의 서신을 전달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여인의 이름은 모드 곤.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 예이츠의 사랑은 이날 시작됐다. 모드 곤을 본 예이츠는 첫눈에 반했다. "바뀌었다. 바뀌었다. 내 인생의 고뇌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할 만큼 그날의 조우는 섬광처럼 예이츠를 흔들었다. 하지만 모드 곤은 시(詩)보다, 사랑보다 아일랜드의 독립이 더 중요했다. 그녀는 "당신의 시를 통해 내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아요"라며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모드 곤이 청춘을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쏟아붓는 동안 예이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뿐이었다.


이 무렵 예이츠의 좌절을 잘 표현한 시가 '사랑의 슬픔'이다. 일부를 옮겨본다. "모든 것 중 알고 있는 것은 다만 한 가지뿐 /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 머리 기댈 수 없고 그 머리카락에 입맞춤할 수 없음을 / 오 황야의 짐승이여, 공중의 새여 / 나는 너희들의 사랑 노래를 견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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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는 평생 모드 곤의 주위를 맴돌았다. 1903년 모드 곤이 존 맥브라이드와 결혼했을 때 그는 넋이 나갔다. "잠시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모드 곤이 예이츠가 아닌 맥브라이드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맥브라이드에게는 예이츠에게 없는 모습이 있었다. 그는 독립투사였다.

1916년 영국 지배에 저항한 부활절 봉기가 일어났고 주동자였던 맥브라이드는 교수형을 당한다. 맥브라이드가 죽자 예이츠는 다시 모드 곤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예이츠의 부인보다는 투사의 미망인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맥브라이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숀도 훗날 독립투사가 된다.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남았다. 모드 곤에게 순정한 연시를 바친 예이츠는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모드 곤의 아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 두 명의 독립투사를 키워낸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예이츠는 노년에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의 시 중에 '그대 늙었을 때'라는 작품이 있다. 물론 모드 곤에게 바친 시다.

"그대 늙어 백발이 되고 잠이 많아져 / 난롯가에서 고개 끄덕이며 졸 때 /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고 / 그대의 눈이 지녔던 / 부드러운 표정과 그 깊은 그늘을 생각해 보세요.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고 / 참 혹은 거짓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었나요 /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 그대 내면의 영혼을 사랑했고 / 그대의 변해가는 얼굴을 사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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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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