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하룻밤 새 40년을 늙어버린 사나이

입력 2021/12/04 00:07
헤르만 불 (1924~1957)

"지구가 생긴 이래 인간으로는 처음 여기에 서 있다"
산악 소설의 경전 '8000미터 위와 아래' 쓴 등반가
1115303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는 산악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악명 높은 봉우리다.

현지인은 높이 8125m 낭가파르바트를 '다이마르'라고 부른다. '산 중의 산'이라는 뜻이다. 유럽 원정대들은 낭가파르바트를 '킬러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 입구에는 이렇게 써 있다.

'당신의 왼쪽을 보시오. 죽음의 산. 낭가파르바트'

1115303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낭가파르바트를 가장 먼저 등정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인 헤르만 불이다. 그의 생사를 건 낭가파르바트 등정기 '8000미터 위와 아래'는 산악 논픽션의 위대한 걸작이다.

헤르만 불은 1953년 7월 3일 오후 7시, 17시간의 사투 끝에 낭가파르바트 초등에 성공한다. 그는 혼자였다.


식량과 장비를 가지고 그를 따르던 일행은 등정을 포기한 채 돌아갔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텐트와 침낭, 산소통까지 버린 상태였다. 정상에 선 그는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드디어 나는 이 산의 최고 지점에 섰다. 8125m 낭가파르바트다! 더 오를 곳이 없다. 한두 걸음이면 사방이 낭떠러지다. 나는 지금 지구가 생긴 이래 인간으로는 처음 여기에 서 있다."

감격도 잠시 무사히 내려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곧 밤이 찾아왔고 그는 8000m 높이 벼랑 사이에 끼어 밤을 지새워야 했다. 산소가 없어 숨 쉬기도 힘들었고 기온은 영하 30도였다. 하지만 헤르만 불의 마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비바크 색도 슬리핑 백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했다. 모든 일이 그저 당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 아닌가."

눈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스물아홉 살의 산악인은 의연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라며 단독 등정을 선택한 자신의 의지를 후회하지 않는다.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운 생명을 지키며 하룻밤을 견디고 날이 밝자 헤르만 불은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뇌에 산소가 모자라면 생기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그는 정상을 향해 떠난 지 40여 시간 만에 캠프로 돌아왔다. 이틀 사이에 얼굴은 60대 노인이 되어 있었고, 동상으로 손가락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헤르만 불이 산을 대하는 자세는 숭고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흡사 수행자의 태도와 닮았다. 고행을 통해 홀로 깨달음을 얻고, 결국은 그 깨달음마저 의미 없다고 말하는 수행자.

헤르만 불은 산에서 생을 마감한다. 낭가파르바트 등정 4년 후 8047m 브로드피크(K3)에 도전했다가 눈 폭풍을 만난다. 그는 거대한 눈더미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책 '8000미터 위와 아래'에 있는 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준비했습니다. 내 생애는 오직 이곳에 와서 당신을 뵙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1115303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