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맥킨지의 6년전 제언 [손현덕 칼럼]

입력 2021/12/22 00:07
수정 2021/12/22 05:58
메르스사태 때 복지부에 전달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다른 환자를 소홀히하지 말라
더 심각한 의료재앙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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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흔이 다 된 친척 어르신 한 분이 낙상으로 골반을 다쳤다. 통증도 통증이려니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평소 다니던 병원을 갔으나 병실이 없었다. 퇴원환자가 생기면 그때 입원조치가 되니 일단 응급실에서 대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다른 병원을 가까스로 소개받아 수술을 하게 됐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대책의 실패가 예고한 재앙이다.

친척 어르신 사례를 들먹이는 건 민망하고 사치스럽다. 작년 3월 18일 경북 경산시에 사는 꽃다운 17세 고등학생 정유엽 군이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입원조차 못하고 사망했다. 급성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호흡기능상실)이 사망 원인이었다.


직장암 3기 투병 중인 그의 아버지 정성재 씨가 1년 뒤 아들의 입원치료를 거부한 병원에서 청와대까지 380㎞를 아들의 영정을 들고 걸었다. 아버지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면담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일정이 안 돼서…." 정부는 이때도 코로나 사태가 야기할 의료공백의 심각성을 예견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지역 병원에 근무하는 현직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아직 의료붕괴가 아닌 걸까요? 이미 붕괴라고 생각합니다'였다. 그는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119 전화를 받아도 수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한다"며 "119 대원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근무하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게 붕괴가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따진다.

코로나 확진자보다 목숨이 훨씬 더 위태로운 환자들이 응급실에 자리가 안 나 앰뷸런스에서 몇 시간이나 대기하고, 겨우 찾아 들어간 병실에선 산소호흡기가 없어 애를 태운다. 그나마 앰뷸런스라도 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애꿎게 저세상으로 간다. 이제 제2, 제3의 정유엽 군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병원 관계자들이 증언한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지 몰랐다고 하면 무지이고, 알고도 대응을 못했다면 직무유기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전 국민이 다 안다. 준비 부족도 이런 준비 부족이 없다. 무능력도 이런 무능력이 없다.

6년 전 일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2015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서 한 부를 전달한다. 한국이 메르스로 고통받는 것을 보고 지식 공유 차원에서 작성한 보고서다. 맥킨지는 한 해 전인 2014년 메르스가 창궐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부의 용역을 받고 위기 대응을 위한 컨트롤타워 수립과 운영 지원에 관한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 맥킨지는 이 당시 경험을 정리했다. 머리로 쓴 보고서가 아니라 발로 쓴 보고서다.

대강 요약하자면 7가지의 제언인데 그 첫 번째가 놀랍다. '다른 환자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다. 메르스 환자가 아니라 다른 위급한 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 진료가 불가능한 2차 재앙을 대비하라는 것. 맥킨지는 보고서에서 이 대목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위기 대응팀에 고참 한 사람을 두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과연 이렇게 하면 메르스와 관계없는 중증 환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하라"고.

지금 한국에서 이런 재앙이 벌어지려고 한다. 아니 이미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에만 매몰돼 부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나오고야 말 초과사망률 통계가 어쩌면 정부의 무지와 무능에 철퇴를 내릴지 모른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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