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매경포럼] 조금은 덜 부끄러운 후보 뽑고 싶은 마음

입력 2022/01/18 00:07
나라 이끌 가치·비전으로
유권자 공감 얻지 못하니
닮은꼴 포퓰리즘 경쟁으로
승부하는 후보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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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기왕이면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어한다.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싶다. 명품은 이런 마음을 겨냥한다. 애플 아이폰이 그런 예다. 아이폰을 쓰면 애플의 혁신에 동참하는 거 같다. 세련된 사람이 된 기분이다. 고가에 아이폰을 사는 이유다.

투표하는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다. 남들도 그렇게 봐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재명(또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해'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남들이 '그 후보를 지지하는 당신은 양식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정당도 명품 회사만큼이나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잘 안다.


더불어민주당이 '우리는 민주주의, 상대는 권위주의'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는 것도, 국민의힘이 '우리는 대한민국 성장의 주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민주당을 찍는 유권자는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괜찮은 사람'으로, 국민의힘을 찍는 유권자는 '나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게 통하면 유권자는 해당 정당에 적극 투표하게 된다. 투표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우월감까지 느낀다.

이번 대선도 시작은 그런 식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불평등 해소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공정을 기치로 내세웠다. 자신을 찍으면 '나는 불평등을 용납 못하는 사람' 또는 '공정을 지향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 거라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웬걸, 유권자들은 그런 기분이 안 든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으로 불평등 해소라는 기치가, 윤 후보는 아내의 허위 경력 의혹으로 공정의 기치가 훼손됐다. 게다가 이 후보는 형수 욕설 등으로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윤 후보 역시 온갖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어느 후보를 찍더라도 남들에게 떳떳하게 이 사람에게 투표했다고 말하기가 민망하다는 유권자들이 많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게 그 증거다.

기업이 이런 상황에 빠지면 대응 전략은 뻔하다. 소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못 주면 '직접적 이득'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마트에서 파는 온갖 치약을 보면 알 수 있다. 치아에 이득이 된다는 별별 기능을 자랑한다. 그러나 소비자 눈에는 모두가 비슷하다. 그게 그거다.

대선후보들의 대응도 다를 바 없다. 후보마다 자신을 찍을 때 얻을 이득을 강조한다. 이 후보는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탈모인들에게 약속했다. 윤 후보는 장병들에게 월급 2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표를 다오, 돈을 줄게'라는 포퓰리즘 경쟁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없다. 특정 유권자 집단에 얼마나 더 빨리 더 큰 이득을 약속하느냐는 경쟁만 있을 뿐이다.

유권자들은 답답하다. 이득을 좇아 투표하면서 자긍심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명색이 대통령선거 아닌가. 내 한 표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그 비싼 한 표를 자랑스럽게 행사할 수 없는 처지라고 느끼는 유권자들이 많다니 기가 막힌다. 비유하자면 수백만 원을 주고 옷을 골라야 하는데 어느 옷을 입든 '어떻게 저런 옷을 골랐느냐'는 비웃음을 받을 거 같은 기분이다.

이런 때는 대안을 찾게 된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는 후보가 없나'라며 둘러보게 된다. '당신을 찍는 나는 그 가치와 비전의 실현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후보를 찾게 된다. 그러나 그 희망을 접는 사람이 늘어나는 거 같다. 그렇다면 조금은 덜 부끄럽고 덜 민망한 후보를 고를 수밖에 없다. '나는 포퓰리즘이 덜한 사람을 뽑았다'거나 '민주주의를 덜 후퇴시킬 것 같은 후보를 골랐다' 정도의 자부심을 목표로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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