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충무로에서] 나랏빚 추경, 폭탄 위에서 치는 포커판

입력 2022/01/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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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사내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포커를 친다. 테이블 밑에는 시한폭탄이 초침을 새기고 있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 다행히 게임이 끝나고 사내들이 일어나려는 순간 한 사람이 말한다. "자, 차나 한잔하고 가지." 할리우드 영화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정의하는 서스펜스는 이렇다. 사람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심리다.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이 벌이는 머니게임은 한 편의 서스펜스 영화 같다. 포퓰리즘에 맛들인 여야가 나랏돈을 제 돈처럼 포커판에 깔아놓는데 테이블 밑에는 재정위기 폭탄이 째깍거린다.

문제는 이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24일 사상 초유의 1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4조원 규모로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재원 대부분은 적자국채 발행(11조3000억원)으로 충당한다. 이것만으로도 올해 적자국채 발행액은 87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1%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추경 규모는 크게 늘어날 공산이 크다. 표심 잡기 급한 정치권이 정부안으로는 턱도 없다며 35조원은 돼야 한다고 베팅액을 두 배 이상 높였기 때문이다.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가 하면 될 일이라고 패를 넘겼다.

나랏빚을 내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면 생활이 나아질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가격은 내리고 금리는 오른다. 금융권 조달비용이 늘고 대출금리가 오른다. 정치권이 앞장서 서민들 대출 부담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물가 상승과 해외 자본 유출이라는 악재도 이 지점에 걸쳐 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돈줄을 풀면 물가는 오르고 서민들 구매력은 낮아진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금리가 하락하면서 한국의 대외 투자매력이 떨어진다.

공교롭게도 고물가에 시달리는 미국이 조기 금리 인상 채비를 마쳤다. 한국은행은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금리 인상 고삐를 더 강하게 죌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가신용등급에 비해 높은 금리로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며 지난해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액은 사상 최고치(214조원)로 불어났다. 재정 악화로 국가신인도가 타격받고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이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금융시장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런 폭탄이 테이블 밑에 줄줄이 깔려 있는데 정치권은 돈줄 풀기를 주장하며 시한폭탄 초침을 앞당기고 있다. 서스펜스도 이런 서스펜스가 없다.

[경제부 = 김정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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