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화석에너지의 복수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2/09 00:06
수정 2022/02/09 06:08
탄소중립은 중요한 곳
에너지수급은 급한 곳
바둑이 그렇듯이
급한 곳부터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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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출범한 로마클럽은 첫 연구과제로 인류 미래의 거대 담론을 선정했다. "지금처럼 성장하면 130년 후, 즉 2100년엔 어떻게 될까?"였다. 미국 MIT공대에 작업을 맡겼다. 5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2년의 산고 끝에 내놓은 작품이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 주(主) 저자인 도넬라 메도스는 도발적 경구를 날린다. 환경론자들에게는 복음이 되고 성장론자들에겐 저주가 된 문장.

"늘 질문하라. 무슨 성장인지, 왜 성장하려고 하는지,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장인지를."

이 보고서의 하이라이트는 석유 고갈에 대한 예언이다. 당시의 석유 추정량보다 5배나 더 발견될 수 있다는 보수적인 가정을 했다.


그런데도 50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게 보고서의 골자였다. 그래서 고갈 시점은 2022년. 바로 올해다. 보고서 제목을 성장의 한계라고 정한 핵심 근거였다. 그런 예측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됐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50년간 어마어마하게 소비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석유 매장량은 늘어났다. 없던 석유가 생겨났겠는가. 채굴 실력이 좋아진 탓이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환경 담론은 이렇게 기술이 진보하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이 로마클럽 보고서의 아들뻘 되는 게 기후변화 보고서다.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 국제협의체인 IPCC는 30년 전 보고서 앞에 '특별'이란 수식어를 달고 충격적 발표를 한다. 지구온난화였다. 100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지구는 점점 뜨거워졌으며 이대로 가다간 인류가 공멸한다는 메시지였다. 살아남으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며 구체적 실천을 촉구했다. 그 산물이 교토의정서, 파리협정이다.

아버지는 화석에너지의 고갈을 예상했는데 그 아들은 화석에너지의 사용 불가를 외쳤다. 문명을 밝힌 석유, 천연가스, 석탄은 이제 온실가스의 주범이 됐다.


그렇게 찾아온 탄소중립 시대. 작년 말 전 세계 지도자들이 화석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영국의 글래스고에 모여 보란 듯이 탈탄소를 외쳤다. "과학은 가능하다. 의지와 실천이 문제"라고 정치권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이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에 불온한 기운이 감돈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재래식 화석에너지 가격이 한꺼번에 치솟기 시작했다. 대략 2020년 7월부터 시작된 가격 상승세이지만 탄소중립이란 대의명분 앞에 제대로 말도 못 꺼냈다. 그러나 상승세가 이 정도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체 발전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석탄 가격은 톤당 130달러로 불과 1년 반 새 3배나 올랐다. 국제 유가는 100달러 밑으로 바짝 다가서면서 7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가 하면 천연가스는 그때보다 딱 10배 올랐다. 유럽의 풍력발전이 맥을 못 췄고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파동 수준으로 치달았다. 그나마 조정된게 이 정도다. 겨울이 지나면 가스 값은 더 떨어지겠지만 과거로 돌아갈 일은 없어 보인다.

오해 마시길. 기후변화에 대한 예측이 엉터리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탄소중립은 가야 할 길이며 누구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한다. 문제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기술이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 '과학은 가능하다'는 외침은 여전히 공허하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공백을 파고드는 게 화석에너지의 복수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기에 시간적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에너지 파동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바둑엔 큰 곳, 급한 곳이 있다.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먼저 둬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 에너지수급은 급한 곳, 탄소중립은 큰 곳이다. 에너지 수급의 실패는 그 자체가 재앙이다. 탄소중립은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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