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공화적 대통령이 되십시오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3/10 00:07
수정 2022/03/10 06:22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①

제왕적대통령 폐해 너무 커
청와대의 비대화가 원인
헌법대로 국무회의 운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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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좀 붙이셨는지요. 아슬아슬 개표방송에 얼마나 마음 졸였습니까. 여태껏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설레는 아침, 아직도 승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 기분 좋은 말씀을 올려야 할 텐데 조금은 불편한 주제를 꺼냅니다. 언론을 잘 아시니 양해하리라 믿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입니다. 당선인께서도 캠페인 과정에서 그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선인의 검찰총장 취임사를 읽어보니 헌법에 대한 경외심이 대단하더군요. 형사법을 집행하는 검사로서의 생각이 주류를 이룹니다만 저는'권력의 멈춤'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미국과는 다르죠. 미국의 연방헌법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언급합니다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한다(헌법 66조 1항)고 명시돼 있습니다. 국가원수는 내각제였던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 나오는 표현으로 다분히 상징적이었죠. 행정권은 국무원에 속했습니다. 그걸 합친 게 유신헌법인데 이게 민주화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정치만 잘한다면야, 그래서 나라가 편안해지고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지난 수십 년간 보복하고, 감옥 보내고, 자살에 이르게 한 이 지긋지긋한 독점 정치의 폐해를 너무나도 절절하게 깨달았기에 '제왕' 하지 말자는 것 아닙니까?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돼 있습니다. 왕정이 아니지요. '공화'의 의미는 잘 아실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화정신의 핵심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그럼 대통령은 제왕적이 아니라 공화적이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공화적 대통령. 어떻습니까?

이 주제를 꺼내면 개헌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어디 개헌이 쉽습니까? 그건 장기적 과제로 돌리고 우선 단 한 가지만 실천하셨으면 합니다. 청와대 조직을 슬림화하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적용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청와대의 비대화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 말씀이 그냥 법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자 초년병 시절 경제부처를 출입한 적이 있는데 그때 '대통령말씀 해석회의'라는 게 있었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면 그 말씀에 숨겨진 비밀코드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행정부 관료들의 회의입니다. 그러다가 해석이 잘 안되면 청와대 비서실에 물어봅니다. 이 정도면 행정부가 아니라 청와대 정부이지요. 제왕적 대통령으로 가는 길입니다.

헌법에 대통령 관련 조항은 모두 20개입니다. 여기에 대통령 비서실에 대해선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정부의 모든 중요한 정책은 국무회의에서 심의합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의장이고 총리가 부의장이고 장관이 국무위원이지요. 대통령 비서실의 법적 근거는 정부조직법에 나옵니다. 그것도 단 한 개 조항(14조).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두고 실장은 1명, 정무직으로 한다." 이게 전부입니다. 책임대통령, 책임총리, 책임장관이 함께 일하라는 게 헌법정신입니다. 뭐가 더 필요합니까? 국무회의는 무조건 대통령이 주관하시고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 굳이 이 자리에 배석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장관이 대통령의 비서들 아닙니까? 그렇게 하는 게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지난 60년간 켜켜이 쌓인 제왕적 대통령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겠지요. 그렇게 쉽다면 벌써 했을 겁니다. 다들 하겠다고 해놓고 못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제도가 아니라 관행부터 해체하십시오. 아무리 작더라도 실천 하나에 국민은 신뢰를 보낼 겁니다. 제 다음 편지는 2주 후에 배달됩니다.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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