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무능한 충신이 나라를 망칩니다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3/23 00:07
수정 2022/03/23 00:51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②

탕평과 균형보다 중요한 건
능력과 실력
DJ때 반기문 등용을 봐라
26219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때 일입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은 고(故) 홍순영 씨였습니다. 차관을 임명해야 하는데 두 명의 후보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오스트리아 대사였던 반기문 씨였고 다른 한 분은 정치권에서 미는 분이었습니다. 홍 장관은 충북 제천 출신에 충주고 졸업, 반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에 충주고 졸업. 같은 고향에 고등학교 선후배지간입니다. 이 정도라면 반 대사를 차관에 기용하는 건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죠.

홍 장관이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독대를 신청합니다. DJ가 좀 못마땅했겠지요. 결재를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 장관은 이후 인사를 단행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반기문보다 실력 있고 일 잘할 사람 있으면 내게 데려오라"고.

7년이 지나 반기문 차관은 유엔 사무총장이 됩니다. 한국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국제적 인사입니다. 만약 홍 장관이 지역 안배에 매몰돼 반기문을 픽업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유엔 사무총장이 됐을까요.

대통령에 당선된 그 주 일요일 기자회견. 불안하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대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향후 인사 원칙에서 능력과 실력을 강조한 대목입니다. 자리 나눠먹기 해서 국민통합 되냐고 했죠. 실력 있는 사람 뽑아 국민 제대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인수위원회 현판식에서도 그런 말을 했죠.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정부가 돼야 한다"고.

다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탕평과 균형을 강조합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란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진보 진영 일색의 편 가르기로 역풍에 직면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를 반면교사 삼으라고들 합니다.

당연히 자기 사람 끌어다 쓰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본인에게 편한 사람 쓰고 싶은 거야 백번 이해됩니다. 그러나 '윤핵관'이라는 말이 따라붙을 정도로 이 점에 관한 한 국민들 시선이 따갑습니다. 언제든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MSG(MB·서울대·박근혜정부)니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국가경영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고르면 됩니다. 그럼 탈이 없습니다. 홍순영 장관처럼 "반기문보다 잘할 사람 있으면 데려와 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주변만 보지 마시고 삼고초려 해서라도 그런 인재 모셔왔으면 합니다.

인사를 단행할 때 당선인이 그 옆에 서서 발표를 했으면 합니다. 경륜이 높고 실력이 출중하다는 등 그런 말씀 마시고 이 사람 언제 무슨 일을 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시기 바랍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할 겁니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 성별 이런 것들은 당선인 말마따나 나중에 좀 고려하면 될 겁니다. 그게 우선은 아닙니다.

대학 동기 분이 쓴 '그래도 윤석열'이란 책을 보면 당선인이 법률 외에도 좀 아는 것이 있는데 그게 역사라고 하더라고요. 십자군 원정, 로스차일드 가문 등을 언급하면서 나폴레옹을 콕 집었더군요. 그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1815년이죠. 너무나도 유명한 워털루 전투. 아마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전투일 겁니다.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왜 졌는지 모르겠다고 했지요. 유배 중에도 워털루 전투를 복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황제를 몰락시킨 건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아니라 미셸 네나 에마뉘엘 드 그루시 같은 무능한 충복들이었죠. 많은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지점입니다.

엊그제 서울대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께서 한 일간지에 무능한 충신이 정권을 망친다고 쓴 걸 보았습니다. 어디 정권뿐이겠습니까. 나라를 망칠 겁니다. 정말이지 무능한 충신들을 쓰기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하지 않습니다.

[손현덕 주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