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성장담론을 환영합니다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4/06 00:07
수정 2022/04/06 00:50
尹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③

"잠재성장률 4% 올리겠다"
비관론에 주눅들 일 아니다
방법을 알면서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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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경제성장은 찬밥 신세였습니다. 성장의 과실은 기득권자들의 몫이고 낙수효과는 찾아보기 힘들며 성장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지요. 성장론자들은 개념전쟁에서 분배론자들에게 무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착한 분배는 있어도 착한 성장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정권 때 분배가 개선됐어야 맞는 거죠. 과연 그랬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니계수를 보면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 각각 11%, 8%가량 나빠졌습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부에선 오히려 개선된 수치가 나타났지요. 하기야 진보학자들 일부는 지니계수의 신뢰도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럼 그들이 선호하는 최상위 1% 소득분포를 보지요. 1995년에 만들어진 통계인데 이걸로 보면 우리나라는 줄곧 소득불평등이 심해지긴 합니다. 그런데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가 이명박정부 때보다 2배 이상 불평등해집니다. 작년 말 국회 세미나에서 4% 정도의 중(中)성장전략을 제시한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신장섭 교수의 실증자료입니다. 과학적 사실은 이렇게 이념적 허구를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언필칭 성장과 분배는 적대관계가 아닙니다. 러시아 출신의 경제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가 그걸 입증했습니다. 국가가 성장의 궤도에 오르는 초기에는 성장과 분배 사이에 역의 관계가 성립하지만 성장이 가속화될수록 성장과 분배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확인했는데 그게 쿠즈네츠의 '유(U)커브' 가설입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 궤도를 올라타고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부턴 분배도 함께 개선됐다는 점은 굳이 딱딱한 숫자를 제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임금도 올라가니 분배가 좋아진 건 너무나도 당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이 식기 시작합니다. 세계가 부러워한 경제 기적은 어림잡자면 1990년대 후반께 멈춥니다.


첫 문민정부인 YS 때부터 정권이 바뀌길 5번. 이때마다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1%포인트씩 떨어집니다. 지표를 잠재성장률로 하든 아니면 장기간 평균을 내는 장기성장률로 하든 결과는 같습니다. 전염병이 퍼지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든,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든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경제의 행로를 결정한 가장 강력한 법칙은 바로 5년마다 1%포인트씩 성장률 까먹기였습니다.

당선인의 1호 경제공약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입니다. 지난 주말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제시한 국정운영의 4대 핵심 과제를 봐도 성장과 함께 안정도 고려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성장이 멈춰 복지가 늘어나고 분배가 개선될 순 없습니다. 설사 인위적인 정책을 써서 좋은 수치가 나온들 순간의 화장술일 겁니다.

그래서 당선인이 선거 캠페인 중 신 교수의 제안처럼 잠재성장률을 4% 정도로 올려보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제시한 걸 환영합니다. 비관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듭니다. 인구가 늘지 않고 자본 축적이 더딘데, 즉 생산 요소 투입이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런 성장이 나오냐는 주장을 합니다. 윈스턴 처칠이 이런 말을 했지요.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어려움을 찾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는다고요. 전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민소득 100달러 후진국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기적을 일군 나라입니다. 믿고 밀어주고 격려하면 신바람 내는 국민들입니다. 인구는 급하게 못 늘려도 자본투자와 생산성을 높이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거지요.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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