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두 분이 마주 앉아 인수인계를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4/20 00:07
수정 2022/04/20 00:09
尹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④

서류로 된 인수인계서보다
훨씬 값진 암묵적 지식과 경험
파월처럼 文에게 다가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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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5일 워싱턴DC에 있는 국립대성당에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그의 애창곡인 아바(ABBA)의 댄싱 퀸이 울려 퍼졌습니다. 아버지의 고향 자메이카의 레게음악에 맞춰 거구를 흔들곤 했던 파월. 그를 보내는 자리엔 오히려 경쾌한 음악이 어울렸습니다. 전임자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추도사를 했는데 이 역시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는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 간의 비화를 소개합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선 밤새 피 말리는 개표가 진행됐습니다. 민주당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아 급기야 대법원의 판단을 물어야 했습니다. 공화, 민주 서로 원수 같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부시는 국무장관에 파월을 지명합니다.


그날 파월은 성가신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잠시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올브라이트의 집이었습니다. 설마 여기는 안 오겠지 하면서 말이죠. 올브라이트는 파월을 환영하면서 자기 집에서 국무장관의 인수인계를 했다고 합니다. 부하 직원들도 모르는 일이었지요. 불과 몇 시간 남짓의 그 대면 인수인계가 몇십, 몇백 페이지의 공식 인수인계서보다 훨씬 값진 암묵적 지식이고 경험이었다는 걸 두 사람은 알았을 겁니다. 사실 파월은 몸을 숨기려고 온 게 아니라 전 정권의 외교 진수를 전달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브라이트는 그걸 알았던 거죠.

대통령이 바뀌고 국무총리,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의 인선이 마무리됐습니다. 청문회가 좀 시끄러울 것 같긴 합니다만 본격적인 인수인계의 시간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유머와 여유,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런 건 도저히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수를 안 받겠다는 건지, 인계를 안 해주겠다는 건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귀다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아름다운 인수인계냐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래도 앞으로 남은 3주간의 기간에 작은 기적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역설적으로 선거 이후 두 정당이 극도의 불신의 늪에 빠져있고 갈등의 골이 깊게 파일 대로 파인 지금이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의 싹을 틔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바닥까지 가면 반등하는 게 이치 아닙니까. 간혹 그 밑에 지하실이 또 있기도 합니다만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통 크게 먼저 다가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외부에 알리지 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해 소주 한잔 하자며 파월처럼 잠입 방문(?)하는 겁니다. 지난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생일 때 선물할 케이크도 시내 유명 호텔에서 직접 고르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걸 참 잘하시는 분입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시지요. 배석자 없이 단 두 분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지난번 만남에서 비록 흉금 없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당시 장제원 비서실장의 브리핑이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겠나 싶습니다. 2시간 51분이란 시간, 비빔밥이라는 메뉴.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죠. "국정은 축적의 산물"이라고요. 한 달 후면 당선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납니다. 문 대통령이 딱 1년 전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했습니다. 6시간 회담 결과는 비교적 자세하게 1만7550자의 공동선언문으로 정리되긴 했습니다만 문서에 담기지 못한 소중한 정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크랩케이크 오찬도 하지 않았나요. 지난달 말 동아일보에 윤 당선인에게 김정은의 도보다리 대화부터 인수하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공감했습니다. 이런 게 축적돼야 할 국가자산 아닐까요.

당선인이 움직이면 장관 내정자들도 따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3주면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길을 터 아름다운 인수인계의 전통이 정부, 공공기관, 민간기업에까지 확산되길 기대해 봅니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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