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논두렁시계 복수가 능사인가 [최경선 칼럼]

입력 2022/04/28 00:07
수정 2022/04/28 00:19
간첩·범죄자 활개 치든 말든
국정원·검찰 박살내고
이명박은 끝까지 가둬놓고
복수 완수하면 만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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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다. 그는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첫 국내 전직 대통령이다. "나는 평생 국가균형발전을 외쳤다. 그러던 내가 서울에 머문다면 국민들이 무엇이라 하겠는가"라고 했다. 김해 봉하마을에서 "생태계가 살아있는 농촌을 만들겠다"던 그의 포부는 머지않아 깨졌다.

느닷없이 '논두렁 시계'가 등장했다. 망신주기다. 노 전 대통령 일가를 겨냥한 검찰수사에서 "(뇌물로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증언이 있었던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봉하마을에 명품시계 찾으러 가자"는 조롱과 비아냥이 넘쳤고 며칠 후 노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했다. 논두렁 시계의 진실은 몇 년 뒤에야 드러났다.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국가정보원이 만들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검찰과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론은 국정원 농단에 놀아난 꼴이고 검찰은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지 않은 책임이 있다.

'논두렁 시계' 파장은 노무현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친구 문재인 변호사는 이 일을 계기로 "몸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한사코 거부하던 정치의 길에 뛰어들었다. 복수를 위해서다. 최측근 7명이 영결식 직후 그를 찾아가 "누가 노무현의 복수를 할 수 있겠느냐"며 눈물을 흘리자 비로소 그가 "짐을 떠안겠다"고 했다 한다. 노무현·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연달아 근무한 핵심 측근의 회고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게 됐을 때 많은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살인자는 사죄하라"고 고함치던 인물은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이명박은 감옥으로 향하는 신세가 됐다. 검찰, 국정원, 언론도 '논두렁 시계' 복수의 표적이다.

먼저 검찰의 발톱을 뽑았다. 검경수사권을 조정하는 법안을 2020년 1월 통과시키면서 검찰 수사권을 6대 범죄로 축소시켰다. 그해 12월에는 국정원의 눈과 이빨을 뽑았다.


국내 정보업무를 금지시키고 대공수사권은 2023년까지 경찰에 넘기도록 국정원법을 개정한 것이다. "범죄자와 간첩이 활개 칠 것"이라는 걱정에는 관심조차 없다. 오로지 검찰과 국정원을 두드려 팰 궁리뿐이다. 경찰이 공룡처럼 커질 것이란 걱정도 그들은 무시한다.

지난해에는 언론을 겨냥했다. 가짜뉴스 온상으로 비판받는 유튜브방송은 제쳐놓고 신문·방송만 콕 집어 입을 막으려 했다. 신문·방송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국제 사회에서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멈칫하던 더불어민주당 강경파들이 그사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깃발을 들고 2차 검찰 공격에 나섰다.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며 협조를 당부하더라는 폭로가 나왔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던 이들이 왜 갑자기 검수완박에 올인하는지 알 만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 전 대통령 8주기 기념식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제 퇴임하고 다음달 노무현을 찾으면 5년 만이 된다.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논두렁 시계 복수를 완수했다"며 뿌듯해할 것인가.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히고 싶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삶은 범죄 소굴에 방치될 위기다. 검찰과 국정원이 복수의 칼날을 맞고 발톱을 잃은 탓이다. 그것도 모자라 검찰의 이빨까지 모조리 뽑아내려는 무리수가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화해, 용서, 타협의 몸짓은 온데간데없다. 이러고도 잊히는 게 가능할까. 어쩐지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점점 커진다.

[최경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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