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심윤희 칼럼] 보통 아빠들은 '아빠 찬스'에 절망한다

입력 2022/05/05 00:07
장관후보자 자녀 특혜 의혹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나
국민 눈높이 못미치는 도덕성
불법 아니라 해도 용인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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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이가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뒷모습을 보며 결심했었다. "그래, 엄마가 끝까지 지켜줄게."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귀하다. 연약한 내 아이를 돕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서 더 이상 부모가 손을 대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풀가동할 수 있는 '거미줄 인맥'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입시, 취업, 병역이라는 관문 앞에서다. 누구는 혼자 뛰고 있는데 누구는 부모가 업고 뛰어준다면 그건 반칙이기 때문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반칙이 만연해 있고, 게다가 엘리트 부모일수록 '찬스' 사용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그게 곪아 터진 게 2019년 조국 사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이 자녀의 스펙이 되는 불공정성이 드러나며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런데 '조국 사태'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공정과 상식을 슬로건으로 내건 윤석열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아빠 찬스' 논란에 휩싸였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과 딸은 아빠가 경북대병원 부원장·원장 재직 당시 그 학교 의대에 편입했고, 3일 자진 사퇴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가족 4명은 모두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도마에 올랐다. 아빠가 재직 중인 의대에 편입하고, 아빠가 동문회장인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는 사례가 흔한 일인가. 우연과 행운이 이들에게만 반복될 수 있을까.

정 후보자에 대해서는 이해충돌 논란이 뜨겁다. 아들이 의대 편입에 지원한 해에 지역인재 특별전형이 신설된 것이나 그와 논문을 함께 쓴 교수들이 후보자 자녀에게 높은 면접 점수를 준 의혹 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런데도 정 후보자는 3일 인사청문회에서 "'아빠 찬스'는 절대 쓸 수 없는 구조였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각종 의혹에 "위법성은 없다"고 항변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정 후보자 의혹에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겠나"고 했다.


이는 조국 사태 때 문재인 대통령이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여론을 외면한 채 조 전 장관 임명을 강행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검찰이 대대적 수사에 나서며 불법이 드러났고 국론이 분열됐다. '부정의 팩트'를 확인하려면 조국 사태와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다.

국민이 공직자들에게 기대하는 도덕성은 불법 요소만 없으면 되는 게 아니다. 특히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복원하겠다며 출범한 정부라면 그 기준은 더 높아야 한다. 정 후보자는 "부모가 속한 학교나 회사, 단체 등에 자녀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없는 상태였다"며 이해충돌 회피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을 규범 부재 탓으로 돌렸다. 이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국민 분노만 부를 뿐이다. 의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딱 4년간만 유지된 편입제도로 두 자녀가 입학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수험생 커뮤니티에 "부모가 의대 교수가 아닌 사람은 서럽다" "공정은 개뿔, 의대 가고 싶어서 열공하는 애들 안 보이는지" "대학교수 자녀 의대 입시 전수조사하자"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새 정부의 인사 원칙이 능력주의라고 하더라도 도덕성이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장관들로는 신뢰를 얻을 수도, 국민 통합을 이뤄낼 수도 없다. "불법은 없다"는 이유로 사회 지도층의 특권과 반칙을 용인한다면 보통의 아빠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터지는 '찬스 논란'에 허탈하고 무력감을 느낀다는 아빠가 한둘이 아니다. 평범한 아빠가 무능한 아빠가 되는 세상이 돼선 안 된다. 무너진 공정을 다시 세우려면 새 정부는 '아빠 찬스'라는 고질병부터 걷어내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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