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김인수의 경영과 사람 사이] "바보야, 문제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자율과 신뢰라고!"

김인수 기자
입력 2022/05/10 09:29
코로나19 시대 재택근무의 핵심 특징은 '강요된 신뢰'다. 재택근무를 하면 상사는 부하 직원을 감독할 수가 없다. 눈앞에 부하 직원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일하는 시간과 방식을 부하 직원의 자율에 맡기게 된다. 물론 상사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직원이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집에 있으니, 그에게 자율을 주는 수밖에.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을 잘 해낼 거라고 '신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발적인 신뢰가 아니라 '강요되고 강제된 신뢰'다.

요즘 코로나19 위기가 진정되면서 기업과 직원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요구하는데 직원들은 "싫다"고 한다. 네이버에서는 직원들이 이겼다. 7월부터 주 5일 재택근무제를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네이버 직원들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집에서 쭉 근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직원들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주 5일 재택근무'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런 요구를 무시하면 젊은 MZ 세대 인재들이 이탈할 걸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사들은 이런 MZ 세대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집보다는 사무실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일하는 게 업무 효율이 더 높지 않겠느냐고, 협업도 더 잘되지 않겠느냐고, 서로 간에 유대감이 높아져 회사에 대한 소속감도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들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말도 인용한다. "네트워크 시대에는 이메일이나 아이챗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에서 나오는 겁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일의 진행 상황을 묻고 진심 어린 반응을 보여 주다 보면 곧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로 요리를 하게 되지요." 그러니 사무실에 나와서 얼굴을 보며 일하자고 한다.

그러나 MZ 세대들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응이다. 자율과 신뢰가 없는 곳에서는 창의성이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한국 직장의 사무실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한다. 일하는 중에 수시로 간섭받는다. 회의는 십중팔구 상사의 강연이 된다. 직급이 낮은 직원은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인다.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 같은 건 없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젊은 직원들은 줌회의가 그립다고 한다. 줌 회의에서는 상사를 면전에서 보지 않으니 강압적인 분위기가 덜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하면 상사가 오너나 경영진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벌이는 무익한 일, 상사가 부당하게 떠넘긴 업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이다. 하루 중 언제든 그런 일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출근한다고 한다. 그들은 "재택근무의 자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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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구청 사무실에서 재택근무 중인 공무원의 자리에 ‘재택 근무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있다.<매경DB>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웠던 구호가 문득 기억이 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했던 말이다. 이 말을 요즘 재택근무 논란에 적용하면 이렇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자율과 신뢰야!"라고 말이다. 직원들이 진정 원하는 건 재택근무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율과 신뢰다. 상사의 부당한 간섭 없이 자율권을 갖고 일하기를 바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사무실이든 집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되려면 상사가 직원들을 신뢰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재택근무는 직원들이 신뢰받을 만하다는 걸 입증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그동안 상사의 간섭과 감독이 과도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관리자 수를 지금보다 줄여도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무실의 꼰대 문화만 개선된다면 직원들도 무조건적인 재택근무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나와서 얼굴을 보면서 처리할 일도 분명히 있다. 대면으로 안부를 물어야 유대감과 인간적인 신뢰도 깊어지는 법이다. 주 5일 중에서 2~3일은 집에서, 2~3일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세가 될 것 같다.

주주들도 하이브리드 근무를 원할 것이다. 사무실 비용의 95%는 임대료다. 지정좌석제 대신 자율좌석제를 채택하고, 사무실 출근자를 절반으로 줄이면 사무실 임대 비용 역시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앞으로 직원들이 전일 사무실 근무를 원하면, 주주들이 "사무실 비용 이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 재택근무는 필연이다.

결국 직원들에게 더 큰 자율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직원들은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더 큰 자율을 보장받으면 더 큰 성과를 낼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과거에는 사무실에 앉아 시키는 일만 하고, 상사 눈치 보면서 시간만 때우더라도 생존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오로지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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