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김대영 칼럼] 지금은 대한민국 비상경영 시대

입력 2022/05/11 00:06
전쟁·공급망·금리 충격에
재계, 속속 비상 계획 수립
국가·가계도 복합 위기상황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짜야
414065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기업들이 앞다퉈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중국 상하이·베이징 봉쇄로 공급망 사태가 악화되고,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이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한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긴급 사장단회의를 개최해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점검에 나섰다. 자금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 SK쉴더스는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기업공개를 철회했으며 시장금리가 급등하자 일부 대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계획을 보류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고무 가격이 급등하자 모든 계열사 임원들의 임금을 20% 삭감키로 했다.

지금처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불확실할 때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보는 게 필요하다.


이 분야의 대가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시나리오 경영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두 차례 오일쇼크 때 기름값이 3~4배 급등하고 기업 실적이 곤두박질치자 수많은 기업의 종업원들이 판매사원이 되어 회사 제품을 직접 팔러 다니기도 했는데 이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모든 것을 직접 해볼 수 없다"며 "컴퓨터를 활용해서 거시적 흐름을 분석하면 미래 예측이 쉬워지는 만큼 시뮬레이션 경영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곤 했다. 시나리오 경영은 반도체 기업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정치·경제 여건 변화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수시로 반도체 가격이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적절한 시나리오를 선택해왔다. 2018년 반도체산업 슈퍼사이클이 찾아오기 수년 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평택(P1, P2), 이천(M14)에 공장을 짓고 호황에 대비해왔다. 미래 흐름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이런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 반도체 기업인 엘피다가 파산해 미국 마이크론에 넘어간 것과 비교하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

위기는 취약한 부분부터 무너뜨린다. 위기가 터지면 신흥국이 먼저 타격을 받고 자금 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부터 힘들어지고 대출이 많은 가계나 자영업자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선제적인 시나리오 경영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미국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릴 때는 예외 없이 한국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국가나 가계에도 위기 상황이다. 갓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경제와 외교안보 등 각 분야에서 해결할 난제와 맞닥뜨렸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高경제'와 무역수지 적자를 비롯해 지난 5년간 400조원 넘게 늘어난 국가부채와 1800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빚 지뢰를 떠안고 있다.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를 위해서는 168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설득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외교안보 문제도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다. 미국의 신뢰 회복과 한일관계 복원은 물론이고 북한의 도발과 중국·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물론이고 가계도 힘든 숙제를 받았다. 급격한 물가 상승에 따라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데 금리가 인상되면서 부채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할 때는 연간 목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럴 때는 완벽한 해법을 도출하려고 나서기보다는 대내외 변수를 고려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부터 짜야 한다.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 가중치를 둔 시뮬레이션도 돌려보아야 한다. 상황이 바뀌면 수시로 대응법을 바꾸는 순발력과 유연성도 중요하다.

[김대영 산업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