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 일본인들은 왜 애완견처럼 얌전해졌을까?

입력 2022/05/14 00:07
루스 베네딕트 (1887~1948)

"일본인의 모순,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진실이다"
2차대전 이후 독특한 국민성 분석한 美인류학자
42563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2차대전이 끝나고 승리자로 일본열도에 입성한 미군은 걱정이 많았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통치하는 게 문제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일본인들은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를 몰고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독종'들이었다. 2차대전 말기 '가미카제'로 불리는 일본의 자폭공격은 무려 1000회가 넘게 감행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동남아 전선에서 항복을 거부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미군정청은 자살테러와 게릴라 공격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대비를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뜻밖이었다. 일본인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얌전히 미 군정에 순응했다. 미군 1개 소대가 일본인 10만명쯤을 다스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쓴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드 라보에시의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인이었던 셈이다.

425630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라보에시는 책에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복종이 강요된 것이라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대부분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어느 나라와도 구별되는 독특한 기질과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누구는 그들을 두고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하고 잔인한 사람들이라 하고, 또 누구는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예의 바르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느 것이 일본인의 본모습일까. 아니면 그들은 태생적으로 이중적인 사람들일까.

전후 상황에 놀란 미 국무부는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국민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한다. 그 결과물로 1946년 출간된 책이 유명한 '국화와 칼'이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상징적이면서 중요한 개념 하나를 던진다. '(일본인들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가 그것이다.


그는 일본의 독특한 계층제도가 일본인의 정서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즉, 일본인들은 계층이라는 틀 안에서 가치판단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보편적인 평등과 자유 이념을 부르짖는 서구 사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일본인을 기계에 묘사하기도 하지만 베네딕트는 아무리 사소한 위치라도 개별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특성이 일본의 장점이기도 하다고 봤다. 유추하자면 일본인의 이런 기질 때문에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MBA를 받고 온 수재가 아버지 국숫집에서 국수장인이 되는 일이 가능하고, 학사 출신 직장인이 노벨상을 받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단점도 많다. 계층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포기도 서슴지 않는다. 공동체가 곧 법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자유와 자존을 포기해 버린다.

베네딕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의 모순,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진실이다."

425630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