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손현덕 칼럼] 바이든의 타초경사(打草驚蛇)

입력 2022/05/18 00:07
수정 2022/05/18 06:53
美는 동맹, 中은 동반자
등거리외교는 불가능
3일후 바이든과 IPEF논의
중국 눈치볼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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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 미국 수도 워싱턴에선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정상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것. 미국과 아세안이 파트너십을 맺은 지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 제목에 비전(Vision)이란 표현까지 얹었다. 그렇게 바이든은 아세안에 공을 들였다.

기본적으로 아세안을 이해하는 2개의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아세안 중심주의(Centrality). 중국의 남쪽, 인도의 동쪽에 있는 10개국이 똘똘 뭉쳐 글로벌 무대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둘째는 이른바 운전석(Driver's Seat)에 앉는다는 것. 아세안과의 회의 장소는 늘 아세안 10개국 중 한 곳이다.


다른 곳으로 모시려면 그 앞에 비싼 단어 하나를 붙여줘야 하는데 그게 '특별(Special)'이다. 바이든이 이번에 아세안을 불러 모은 회의의 명칭도 '미·아세안 특별정상회의'였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을 무시했다. 떼쓰고 돈이나 갈취하는 B급 나라들의 모임으로 치부했다. 대신 택한 나라가 인도였다. 기본적으로 미국 공화당은 인도를 지정학적 강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제재 대상인 인도와 원자력 협정을 맺은 건 그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트럼프는 인도를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쿼드(QUAD)로 묶었다.

미국의 의도는 자명하다. 중국 견제다. 바이든 역시 마찬가지. 아세안 국가 중 어쩔 수 없는 친중 국가가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그래서 나머지 아세안 국가들부터 정지작업을 하고 빅스텝을 밟으려는 의도다. 이번 워싱턴회담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바이든은 장기적으로 아세안을 끌어들이겠다는 포석을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의 정상회담은 아세안회담 일주일 후에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역대급으로 빠른 회담인 데다 일본보다 먼저 찾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이 읽힌다.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흥분할 일도 아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아세안으로 몸을 풀고 한국을 찍고 다음주 일본에서 열릴 쿼드 정상회의에서 팡파르를 울리는 수순이다. 목표가 분명해졌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언급했다. 글로벌 공급망, 디지털 경제, 탄소중립 등을 다루는 경제안보 네트워크다. 쿼드가 지정학적 개념에 가깝다면 IPEF는 보다 지경학적이다. 쿼드가 트럼프 버전이라면 IPEF는 바이든 버전이다.

미국이라는 거함은 그렇게 천천히 중국을 쪼여간다. 이른바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타초경사(打草驚蛇) 전략이다. 일타쌍피로 러시아도 엮을 수 있다. 중국을 겨냥한 자유국가들의 연대에 러시아도 움찔할 것이다. 이 역시 타초경사다.

윤석열정부는 이 연대에 합류하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대통령의 혼밥 수모를 겪고 언론인에 대한 폭행까지 경험한 한국이다. 눈치껏 행동하라는 견제구다. 동맹과 동반자 사이에 등거리 외교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지난 5년간 우리는 허상을 쫓았고 그 결과 경제 보복이란 비싼 비용을 지불했다. 한미동맹의 고리가 느슨해지면 중국이 그 틈을 파고드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논리를 망각했다.

다행히 3일 후 용산에서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미 양국 모두가 그동안 약해졌던 고리를 단단히 하겠다는 이심전심이 있다.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 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비정상적 외교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때다. 그래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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