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매경데스크] 인플레이션은 숨은 세금이다

입력 2022/05/23 00:07
40년만에 최고 치솟은 美 물가
바이든, 푸틴에 책임 돌리지만
정책 대응 늦었다는 비판 제기
물가 못잡은 정부, 지지 못받아
45211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부유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

"법인세 인상 논의는 좋다. 인플레이션 대책 논의도 좋다. 그러나 둘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트윗으로 벌인 설전이다. 물가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책임론과 함께 세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 최우선 국내 과제"라고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 상승의 주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바로 '100년에 한 번 있는 전염병'과 '푸틴이 벌인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은 맞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과도한 정부지출과 완화된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며, 미 정부와 연방준비제도가 물가 상승에 늑장 대응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연준이 2019년 12월부터 올해까지 발행한 달러가 그 이전 23년간 발행한 달러보다 많을 정도로 많은 돈이 풀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헬리콥터 머니'를 뿌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물가가 오르기 시작할 때 정부와 연준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 번은 시도했어야 할 정책이었지만, 진보 경제학자들은 정부부채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인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전까지 정책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구조개혁 법안 통과를 앞두고 "(이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가 한 세대 동안 보지 못했던 종류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 경고음을 울려왔던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마저 "기준금리를 조금 더 일찍 올렸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세간의 비판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비난의 화살을 푸틴과 기업의 탐욕에 돌리며 물가 상승은 정책 탓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는 '자신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우리의 정책이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세 없이 정부지출을 늘린 대가는 물가 상승이고, 물가 상승은 서민에게는 증세와 다를 것이 없다. 세금 고지서가 날아들거나, 월급에서 직접 떼어가지 않을 뿐 물건을 살 때마다 '숨겨진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급등한 물가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짐이다. 치솟는 휘발유 가격과 밥상 물가 탓에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 수준이다. 새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도 물가 안정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 상당수가 돈을 더 풀어야 하는 것들이다. 대선후보 시절 발표한 수십조 원 규모 현금 복지와 감세 공약 이행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CNN에 기고한 칼럼에서 인플레이션 대책 중 하나로 '통화 완화가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는 환상을 끝내는 것'을 꼽았다. 이 환상을 깨지 않으면 물가를 잡기 어렵고 그 피해는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베이조스는 바이든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며 "인플레이션은 극빈층이 가장 피해를 보는 역진세(regressive tax)"라고 했고,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인플레이션은 최악의 세금"이라고 했다.

1980년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이 물가 급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대패한 것을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윤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은아 국제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