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필동정담] 추앙 신드롬

입력 2022/05/24 17:34
45893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추앙(推仰)'이란 말. 어쩌다 책에서 봤을 법한, 일상에선 거의 쓰지 않는 단어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높이 받들어 우러르는 것.' 용례로 '충무공 이순신은 성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가 있다.

이 낯선 단어가 갑자기 일상으로 훅 들어왔다. 최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이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라고 외치면서다. 처음에 들었을 땐 어색함을 넘어 거부감까지 들었다. 그것도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대상으로 추앙해 달라니. 그런데 자꾸 들을수록 묘하게 빠져든다.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인 계약직 여주인공은 추앙에 대해 이렇게 부연설명한다. "응원하는 것, 너는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조언하지 말고, 위로하지 말고 그저 추앙만 하라"고 한다. 추앙은 흔한 사랑과는 다른,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지지 정도로 해석된다.

드라마가 쏘아 올린 이 말에 2030들이 공감하면서 추앙이 유행어로 떠올랐다. SNS에는 "나 추앙받는 몸이다" "셀프 추앙하기" "추앙실력 업" 등 변주가 자주 눈에 띈다. 왜 대중은 '추앙'에 열광할까. 정서적 공허함과 결핍을 채워주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된 단어 '추앙'까지 소환한 것은 작가가 간파한 시대적 요구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랑, 흠모, 존경 등의 단어로는 담을 수 없어서일지 모른다. 훼손되고 오염돼 본질이 흐려진 단어가 아닌 새로운 '위로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힐링' '욜로' '소확행' 등의 유행어가 등장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어쨌든 사라질 위기의 단어에 의미를 불어넣어 살아 숨 쉬도록 만든 건 흥미로운 일이다. 누구나 지금 얽혀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을 꿈꾸고, 사랑을 뛰어넘는 충만한 지지를 원한다. 그래서 추앙이 필요한가 보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