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이진우 칼럼] 내 스타일대로 일하는 시대

입력 2022/05/25 00:06
대통령 근태 비판 시대착오적
다양한 근무형태 실험 한창
주52시간 유연 적용은 기본
쉴 자유만큼 일할 자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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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출퇴근 시간을 놓고 뒷말이 나오는 건 민망한 일이다.

정치가 참 신기한 영역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그 세계에 발을 들이면 억지를 부리곤 한다. 세계와 시대의 변화에 처참할 정도로 둔감해진다.

오늘날 가능한 한 빨리 출근해서, 가능한 한 늦게까지 일하는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시곗바늘을 1970년대쯤으로 되돌려도 일조 시간에 얽매이는 농수산업이나, 낮은 인건비로 승부하는 단순 제조업에서나 통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에 바탕을 둔 업종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은 '내 스타일'대로 일하는 시대다. 여기서 '내 스타일'이란 개인뿐 아니라 '우리 부서 스타일' 또는 '우리 회사 스타일'대로 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구글, 아마존 같은 외국 기업 얘기를 끄집어낼 것도 없다.


한국 기업에서도 일하는 방식을 놓고 실험이 한창이다. 내 스타일, 우리 스타일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네이버 직원들은 7월부터 근무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원격으로 근무하거나, 주 5일 전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압축적인 협업이 필요한 게임 업체들은 속속 대면근무로 전환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포스코도 '전원 사무실 출근' 체제로 돌아섰다. 많은 기업이 재택과 사무실 근무의 황금비율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더 유연하게'라는 방향성이 뚜렷할 뿐이다.

과거에는 자기 근무 형태에 대한 재량권이 고위직에게만 주어졌다. 예컨대 보초병에겐 엄격한 근무 구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군쯤 되면 근무와 휴식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늘상 긴박한 의사결정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어지간한 간부도 그렇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윈스턴 처칠, 정주영 현대 회장은 여유 있을 때마다 토막잠을 즐겼다. 살인적인 스트레스와 일정을 견뎌낸 비결이다.


이들에게 '왜 근무 시간에 잠을 자느냐'고 시비를 건다고 상상해보라. 대통령 출퇴근 시간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황당한 얘기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내 스타일대로 일할 수 있는 직군의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일부 고위·전문직에게만 허용됐던 재량권을 이젠 일반 직원들이 누리게 됐다. 기술의 뒷받침 덕분이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 전에도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는 거대한 공감대가 존재했다. 한국인들이 너무 오래, 대충 일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래서 주 52시간제가 예외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형태로 도입됐을 때조차도 '한번 해보자'는 결의가 있었다. 일하는 시간은 줄더라도 압축적으로 일하는 스마트한 일터에 대한 기대였다.

지금 그런 결의나 기대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재택근무 보편화로 업무 효율성을 꼼꼼히 따지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한국인들이 짧게, 대충 일하는 풍조에 젖어든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제 팬데믹의 끝자락이다. 다시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건 기본이다. 부서, 개인 차원에서도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쉴 수 있는 게 좋다. 고소득, 전문·연구직은 알아서 일하게 놔두면 된다. 쉴 자유 못지않게 일할 자유도 중요하다.

"출근부 찍지 말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구태여 회사에서만 할 필요 없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한 세대 전인 1993년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했던 말이다.

중요한 건 시공(時空)의 울타리가 아니라 업(業)의 본질이다.

[이진우 국차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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