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문재인은 노무현에게 무슨 약속을 지켰나 [최경선 칼럼]

입력 2022/05/26 00:07
수정 2022/05/26 07:21
국민통합 정신 저버리고
5년만에 정권 내줬어도
마지막까지 복수했으니
내 할일 했다는 그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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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5년 만에 찾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으리라.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는데 공식 발언은 없었다. 추도식이 끝난 뒤 "약속을 지켰습니다. 감회가 깊습니다"라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왔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소회와 대비된다. 그는 추도식 후 "노 전 대통령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했다.

대체 무슨 약속을 마음속에 담았길래 이재명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고 문재인은 "약속을 지켰다"고 했을까.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켰다는 뜻이라면 어딘가 어색한 대목이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어째서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단 말인가.

정치에 뛰어들길 한사코 거부하던 문재인이 정치를 시작한 건 '노무현 복수'를 위해서라고 이 칼럼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난 뒤 측근들이 몰려가 "누가 복수를 해줄 것이냐"며 눈물을 흘릴 때 그가 "그 짐을 제가 떠안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켰다"는 말이 "복수를 했다"는 뜻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문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끝까지 거부했고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법률은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오전에서 오후로 늦춰 가면서까지 공포하게 만들었다. 복수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사이비가 대부분이다. 문 전 대통령부터가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은 평생을 국민통합에 바쳤다. 떠나는 순간에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5년 내내 네 편과 내 편을 가르고 복수의 칼을 휘두른 사람이 그의 앞에 돌아와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원칙을 파괴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탈당이라는 꼼수까지 둬 가며 다수당의 입법횡포를 부린 민주당이 과연 노무현 정신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재명 위원장도 그렇다. 명분 없는 출마에 대해 노 대통령은 2007년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지사 여론조사에서 1995년 제가 1위를 몇 번 한 일이 있다. 출마하겠다고 버티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경기도에 연고도 없고 해서 불리하더라도 부산 가서 출마했다"고 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연고지인 성남 분당갑이 불리해 보이자 인천 계양을 출마를 선택했다. 그러고도 노무현 정신을 얘기하면 부끄럽지 않은가.

올해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그리고 노무현 추도식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직후 4·3 추념식에 참석하더니 5·18 기념식에도 장관·국회의원을 대거 이끌고 참석했다. 과거 보수정당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노무현 추도식에는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에게 '부당한 기득권과 반칙, 특권에 맞섰던 노 대통령의 정신을 잘 계승하겠다'는 친서를 전달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이든 노무현 정신이든 특정 인물이나 세력의 전유물일 수 없다. 그 누구든 국익을 위해 사심 없이 민주주의·국민통합 정신을 실천하면 계승자가 될 것이고 그 반대이면 배신자가 될 것이다. 올해 1월 논란이 됐던 '김건희 녹음파일'에 "우리 남편은 노무현 연설 외울 정도야. 진짜 누구보다 정말 좋아했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 때문에 노무현 정신을 잃어버린 민주당이 더 위태로워 보인다.

[최경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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