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심윤희 칼럼] 교육감, 알고 찍으셨나요?

입력 2022/06/02 00:07
교육감 권한 막강한데
후보·공약도 모르고 투표
깜깜이·복마전 선거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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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보물을 뜯지도 않고 투표장에 갔다가 연두색 교육감 투표용지를 받아들었다면 아마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정당명이나 기호 표기도 없이 이름만 쭉 나열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현재 교육감이 누구였더라" 떠올려보거나 들어본 이름이 없나 살펴볼 것이고, 그것도 없으면 닥치는 대로 찍고 나왔을 게 뻔하다. 투표용지에 이름만 표기하는 이유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판단 기준으로 삼을 정보가 사라지면서 '깜깜이 선거'를 더 부추기고 있다. 총 17명을 선출하는 이번 시도 교육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총 57명. 서울과 세종, 강원에서는 후보가 무려 6명씩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결과,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가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은 서울과 경기에서 각각 60%, 70%씩 나왔다. 대부분의 국민이 교육감 선거에 누가 나왔는지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저조한 관심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다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교육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기 마련이다. 나부터도 아이가 초·중·고에 다닐 때는 주입식 교육, 낡은 커리큘럼, 부실한 공교육에 비분강개했지만 대입을 치르고 나니 교육제도 개혁에 대한 관심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럴수록 국민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지금 교육감 선거는 정책 경쟁은커녕 혼탁한 복마전으로 치닫고 있다. 정당 공천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보니 보수든 진보든 후보가 난립하고 단일화를 둘러싼 이전투구에 고소·고발까지 판치면서 국민 냉소만 더 키우고 있다. 교육감은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국민 관심이 낮은 데 비하면 교육감이 거머쥔 권한은 막강하다. 17개 시도 교육청 예산은 82조원에 달하고 57만여 명의 교직원과 교육청 직원 인사권까지 쥐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예산은 19조원으로 도청 예산(33조원)의 절반을 넘는다.


일선 학교의 개·폐교와 급식 메뉴, 학원 규제 등 사교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 소통령'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깜깜이 선거'로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

관선제와 간선제를 거쳐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것은 2007년이었다.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됐다. 직선제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그 폐해는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특히 정치적 중립은 말뿐이다. 진영 대결로 번지며 교육감 선거가 정치판이 된 지 오래다. 선거 책자에도 '중도 보수 교육감 후보' '전교조 교육 OUT' 등을 표기해 정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선거비용 지출도 만만찮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는 1인당 평균 11억1000만원을 지출했다. 시도지사(7억6200만원)의 1.5배나 쓴 셈이다. 정당 개입 차단으로 후보들이 선거자금을 각자 조달해야 하다 보니 출판기념회가 잦고 뇌물 수수 등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직선제 도입 후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교육감은 11명에 달한다. 애들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교육감 정치 성향에 따라 정책이 수시로 바뀌면서 교육 안정성이 흔들리고 교육 내용 편향성 논란이 거듭되는 것도 큰 문제다.

교육 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비리 교육감을 양산하는 지금의 직선제는 개선이 불가피하다. 영국·독일 등은 지자체장이나 교육위원회가 교육감을 임명한다. 국내에서도 지자체장 임명제, 정당공천제, 시도지사와의 러닝메이트제 등 다양한 대안이 분출되고 있다. 후보도 공약도 모르고 투표하는 깜깜이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국회는 서둘러 교육감 선출 방식에 대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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