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최경선 칼럼] 포르투갈을 항해시대로 그때 세금처럼

입력 2022/06/09 00:07
수정 2022/06/09 07:00
해운·조선업 밀어준 세제가
투자 이끈 나침반이었다
기술에 목숨 걸게 하려면
엉터리 세제부터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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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장관들을 앞에 두고 7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특강'을 했다고 하니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과학기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어조도 예전과 다르다. 첨단 미래산업을 지원하려는 의지는 분명한데 어디서 무엇부터 손댈지 궁금하다.

포르투갈이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비결에서 답을 찾아보자. 그 시절 포르투갈 인구는 140만명 정도였다. 조선의 25%도 안 됐다. 그런 유럽의 변방 나라가 바닷길로 뻗어가며 숱한 나라를 흥망성쇠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 동력은 어디서 왔는가. 척박한 토양 때문에 해상무역에 목숨을 걸어서였나. 이슬람에 맞설 연합세력을 찾아나선 의지 때문이었나. 그런 이유들로는 온전한 설명이 어렵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천문지리학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도 동일한 조건 아니었던가.

포르투갈의 진짜 비결은 해운업 육성에 일관된 의지를 보인 엔리케 왕자의 리더십 그리고 세금·보험 제도라 할 만하다. 오늘날의 해상보험 제도는 포르투갈에서 처음 탄생했다. 선박 수출입 운임의 2%를 거둬 기금을 만들고 해상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보상해주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상인들은 과감하게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세금 지원이 덧붙여졌다. 배를 건조·구매하는 사람에게는 병역의무와 세금을 한꺼번에 면제했다. 배 건조에 필요한 수입자재엔 관세를 면제했고 100t 이상의 배를 건조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왕실 소유 숲에서 마음대로 나무를 벨 수 있도록 허용했다. 첫 항해에 나선 선박의 화물에도 관세를 절반 이상 깎아줬다. 세금 제도가 물꼬를 터주자 돈이 몰리고 배가 뜨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아차 하는 순간 나라의 흥망성쇠가 갈리는 건 신항로 개척 시대나 마찬가지다. 기업이 첨단기술 개발에 온 힘을 집중하도록 뒷받침해야 할 때 한국 정부는 엉뚱한 짓만 했다.


기업에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내 정부가 생색내며 흥청망청 써 댔다. 최근 1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법인세를 낮췄건만 문재인정부는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며 역주행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법인세율을 적용하건만 한국에선 돈을 더 많이 벌게 된 혁신 기업에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우는 4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지금과 같은 기술전쟁 시대에 대기업 연구개발(R&D) 비용에 세액공제를 2013년부터 줄곧 축소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R&D 투자에 대해서도 미국(7%) 독일(19%) 프랑스(37%) 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세금 감면을 해준다. 한국에선 중소기업이면 26%, 대기업이면 2%로 감면 혜택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신성장 기술과 국가전략기술에 대해선 대기업 세액공제율도 높아지긴 하지만 경쟁국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누군가 세법을 거론하면 많은 사람들은 세금 거두려는 시도로 착각한다. 왕과 국가의 횡포로부터 국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 온 피의 결과가 민주주의 그리고 조세법률주의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런 망각 탓에 더불어민주당은 징벌적 세금을 휘두르다가 결국 재보궐·대통령·지방선거에서 3번 연속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이제 분노한 민심을 알았다면 달라져야 정상이다. 매일경제가 3일부터 '낡은 세법 확 뜯어고치자'는 사설 시리즈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기업은 기술 개발에 전념하고 국민은 안심하고 살림살이할 수 있도록 '부담은 낮추고 계산은 단순화하는' 세제 개혁을 지금 해야 한다.

[최경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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