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이진우 칼럼] 탑건, 코카콜라, 맥도널드…신냉전의 서막

입력 2022/06/22 00:07
중·러 탈출 서방기업 늘어나
신냉전 시대 사실상 돌입
'새판 짜기'에 역동성 높아져
선제적 결단으로 기회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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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매버릭'은 1986년 개봉했던 '탑건'의 후속작이다.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배우 톰 크루즈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스토리를 이어간다. 글로벌 개봉 이후 한 달도 안 돼 수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러시아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상영 계획 자체가 없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러시아에 진출한 것은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이다. 올림픽 공식 스폰서 자격으로 소비에트의 빗장을 열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했지만 코카콜라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랬던 코카콜라가 지난주 러시아에서의 완전 철수를 발표했다.

1990년 1월 31일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 소련 땅에서 첫 맥도널드 매장이 오픈했다.


매장 앞에서 장사진을 이룬 모스크바 시민들 사진은 탈냉전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랬던 맥도널드 역시 얼마 전 러시아 탈출을 선언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지난달 중국 내 숙박 서비스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달 들어서는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킨들) 사업 중단, 나이키의 런 클럽 앱 서비스 중단이 발표됐다.

사실 디커플링(탈동조화)은 금융시장에서 더욱 확연하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글로벌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증권시장은 완전히 딴판이다. 뉴욕 증시가 휘청거릴 때 두 나라 증시는 활짝 웃는다.

역사의 지향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지금 세계는 다시 쪼개지고 있다. 신냉전이다.

6·25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은 냉전이라는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약소국의 슬픈 운명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특히 경제는 국제정치, 외교안보와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된다.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선 1960년대 후반 이후 한국 경제는 20여 년 동안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조적으로 유지해왔다.


그 마침표를 찍은 시점이 얄궂게도 1988년이다. 88올림픽이 열리고 냉전이 끝자락에 접어든 해다. 경제적으로 냉전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가 한국이었다. 피아 구분이 명확한 세계는 불편하고 불안할지언정 바짝 움츠러든 세상은 아니다. 오히려 역동성이 넘쳐난다. 절박한 생존경쟁의 아이러니다.

체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이 열렸다. 러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이 포럼의 주제는 '새 세계에서의 새로운 기회(New opportunities in a new world)'였다. 중·러 협력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미국과 유럽의 리더들이 모여 동맹쇼어링, 프렌드쇼어링을 열심히 논의했던 것과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진영은 다르지만 동맹을 맺은 국가끼리, 잘 지내는 국가끼리 서로 돕고 살자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급등,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공급망 교란, 식량·에너지 위기….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세상이 크게 흔들릴 때 큰 기회가 온다. 냉전 시절, 한국은 선제적 결단을 통해 기회를 잡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세계에서 맞닥뜨릴 질문들의 답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때 결단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다. 중국이 40년간 누려왔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어디로 옮겨갈까. 산유국들은 원유 가격 급등으로 벌어들인 떼돈을 어디에 쓸까. 러시아를 빠져나온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어디서 공장과 매장을 짓고 있을까. 톰 크루즈가 일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탑건: 매버릭'의 세계관에 왜 중국·러시아는 없는 걸까.

[이진우 국차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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