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블루베리도 소음고통? 가붕개는 더 죽을맛 [최경선 칼럼]

입력 2022/06/23 00:07
수정 2022/06/23 00:27
문재인 집앞 소란해지니
식물 고통까지 공감하네
욕설·저주에 잠못이루는
가붕개 고통도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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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붕어·개구리 신세가 처량하다. 모진 욕설과 소음에 잠 못 이룬 날들이 얼마인데 막상 블루베리보다 뒷전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하자"고 했던 게 10년 전이다. 그 말에 설레던 이 땅의 '가붕개'들은 조국 사태 때 이미 할 말을 잃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 대응을 볼 때는 또 한번 허탈해진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다녀오더니 "직접 보고 들으니 심각성이 상상 이상"이라고 20일 페이스북에 썼다. 거기에서 수확한 블루베리를 들어보이며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알이 작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칼날 같은 저주를 매일 듣고 있는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겠나 싶었다"고 했다. 식물의 고통까지 헤아리는 그 공감 능력이 놀랍다.


가붕개들로선 설움이 북받칠 일이다. 고함·욕설·장송곡 탓에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해온 세월이 어디 1, 2년인가. 청와대 인근에 국립서울맹학교가 있다. "집회 소음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죽어간다"며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녀도 허사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소음에 더 예민한 시각장애인들의 항변인데도 그 모양이었다.

세계 기술전쟁에 신경을 곤두세운 기업들의 사옥 주변도 마찬가지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장송곡과 욕설이 넋을 놓게 만든다. 사옥 1층에 어린이집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고해도 경찰은 먼 산만 쳐다봤다. 블루베리 열매가 소음과 저주 탓에 얼마나 작아졌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가붕개들은 그런 소음 속에서 대책 없이 살아왔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신경쇠약에 걸린 가붕개도 부지기수다.

북한의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발끈했을 때 민주당은 대북전단금지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헌법상 표현·집회·결사에 관한 자유도 뒷전으로 미뤘다. 국제사회 우려와 항의도 무시했다. 그러던 민주당이 가붕개의 하소연에는 하세월이다.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9건이나 쌓여 있다.


어린이집, 현충원, 문화재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금지시키자는 법안부터 시위 제한 시간을 구체화하자는 법안까지 내용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상임위 문턱을 넘은 법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붕개의 하소연을 이처럼 뒷전으로 미뤄놓던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한두 달 사이 눈에 띄게 부산해졌다. 문 전 대통령이 집 앞 시위대의 욕설·소음에 시달린다고 하니 팔을 걷어붙였다.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발끈했을 때와 비슷하다. 경찰청·양산경찰서에 찾아가 목청을 높여도 여의치 않자 6월에만 집시법 개정안을 4건이나 발의했다. 그중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시위 금지 장소에 콕 집어 끼워넣는 내용이다. 가붕개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문재인 구하기'에만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그나마 한병도 의원은 집시법상 금지 행위에 '반복된 악의적 표현'을 추가하자고 했고 박광온 의원도 '반복적으로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내놨다. 윤영찬 의원은 '1인 시위'도 소음 규제를 받게 하고 '혐오 표현을 사용한 언어폭력'을 금지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때마침 구자근·박대출 등 국민의힘 의원들도 집시법 개정안을 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계기로 집무실 주변의 집회·시위 제한을 좀 더 분명하게 규정하자는 취지다.

가붕개들이 소음 고통을 호소할 때 진즉 집시법을 고쳤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이제라도 야만적인 소음 폭력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블루베리의 고통까지 공감하는 그 정신으로 거대 야당이 앞장서 주기 바란다. 가붕개도 전국 어느 곳에서나 소음공해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최경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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