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마드리드로의 초대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6/29 00:07
수정 2022/06/29 00:07
눈치봐야할 나라는
중국·러시아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초청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이다
56719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의 핵심 어젠다로 제시한 '글로벌 중추국가'는 뭔가? 대강 합의된 정의(定義)는 이렇다.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선도적 국가'. 그럼 세계는 뭐냐는 질문에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라고 답한다.

꼬치꼬치 따지고 들자 신경질적인 반문이 들어온다. "그럼 당신의 정의는 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들은 지금까지 외교에 있어 다자회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늘 기사는 양자회담에서 나왔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세계 공동의 이슈인 다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라고.

북한 핵·미사일, 한일 간 위안부 갈등, 한미동맹, 중국의 한한령…. 이런 게 소위 기사 꼭지였지 민주주의, 테러방지, 보건, 인프라 투자, 난민구호 이런 어젠다는 관심 밖이었다. 이제 와서야 기후변화 정도가 겨우 데스크로 올라온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섰다. 양자가 아닌 다자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외교장관이 간 적은 있어도 대통령이 가는 건 처음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하는 회의에 아시아·태평양 네 나라를 초대했다.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리더들과 공동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한다.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다. 중국을 경계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회의에 들러리를 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중국이 딴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걸 겁내 좌고우면할 일은 아니다. 초청을 거절해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꼴이다. 득실을 따져 득이 크면 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엊그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다.

언론은 한·미·일 정상회의를 주목한다. 세계 주요국 정상 10여 명을 각각 만나 실리외교를 추진하는 데 방점을 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이 오늘 밤 10시 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방출하는 메시지다.


자유와 평화, 번영이라는 가치를 수호할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그게 진심인지, 우리와 같은 편인지, 참가국 정상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세밀하게 뜯어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 역시 똑같은 관점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할 것이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이 반(反)중국, 반(反)러시아 기조를 분명히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한반도가 지닌 특수성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다. 당연히 발언은 신중하고 정교해야 한다. 그렇다고 물에 물 탄 듯 얼버무려선 곤란하다. 이게 더 큰 리스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과 나토 회원국이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초청했다. 오해 살 말은 안 해야 하지만 본질을 피해가면 안 된다.

침략전쟁을 규탄하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제 연대에 동참한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말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작년 5월 한미정상회담 같아서는 안 된다. 일부 디테일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도 있지만 침묵도 메시지임을 인식해야 한다. 조태열 전 유엔대사는 "참모진은 남은 시간 머리 싸매고 단어 하나하나를 다듬어야 한다"고 고언한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연히 우리의 현안을 말할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 참가국의 광범위한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참가국 정상들이 "대한민국은 우리 문제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면서 도와달라는 소리만 하네"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재앙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로 가는 길에 레드카펫은 없다. 지금까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왔다면 지금부터는 8차선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손현덕 주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