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심윤희 칼럼] '하우스푸어' 망령

입력 2022/06/30 00:07
거래절벽에 금리 치솟으며
10년전 공포 되살아나

'고통의 시간' 반복 안하려면
가계부채 축소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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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10여 년 전 유행했다가 사라진 '하우스푸어(House Poor)'란 단어가 요즘 부쩍 다시 들리고 있다. 하우스푸어란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 당시 기획재정부는 '번듯한 집이 있지만 무리한 대출과 세금 부담으로 실질적 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하우스푸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부터였다. 집값이 정점을 찍었던 2006년 전후 과도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주로 하우스푸어 덫에 걸렸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2012~2013년 하우스푸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집값은 곤두박질치는데 대출이자를 갚느라 월급의 상당 부분을 은행에 갖다 바쳐야 하다 보니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고, 샀던 가격보다 수억 원 손해를 보고 간신히 매각한 이들도 있었다. 2012년에는 30대 가장이 집값 하락과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해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정부가 경매유예제 등 하우스푸어 대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찬반양론도 뜨거웠다.

지금 부동산 시장 상황은 10년 전과 같은 '대세 하락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집값 폭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거래절벽이 이어지는 데다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하우스푸어' 공포가 스멀스멀 확산되고 있다. 가장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들은 문재인정부 집값 급등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족'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탓이다. 연 7%까지 올랐던 대출 최고 금리는 '이자 장사 비판'에 6%대로 떨어졌지만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2년 전 신용대출로 9억원을 빌려 강남에 집을 산 맞벌이 A씨도 요즘 늘어나는 이자 부담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다.


2%대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A씨는 매달 150만원가량의 이자를 부담했는데 최근 4%대로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가 300만원대로 늘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더 오를까봐 A씨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주택 시장도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3% 하락하며 4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매수 심리도 7주 연속 떨어졌다. 패닉바잉(공황 구매) 기류에 올라탔던 3040들은 한때 "'벼락거지'를 피했다"며 안도했지만 지금은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0년 전 하우스푸어 악몽을 무시하고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기대 빚으로 집을 샀으니 분명 개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는 10년 전에도 그랬듯 사회경제적 파장이 심각하다. 이들이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면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이는 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은 저서 '빚으로 지은 집'에서 "가계부채 급증은 소비지출 감소를 가져오고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다"며 빚의 파괴력을 경고했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축소와 금리 인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리스크였다. 금리 인상이라는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뻔히 예견됐는데도 부동산 투자자들은 이를 간과한 것이다. 문제는 집값 과열로 지난해 말 기준 1860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부 5년간 무려 500조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 중 주택과 연계된 비중은 67%에 달한다고 하니 집값 하락 시 부실화 우려가 크다. '하우스푸어 망령'이 되살아날까 우려스럽다. 위기가 터지면 10여 년 전 '고통의 시간'을 다시 겪어야 한다. 정부는 생애최초주택 구입자 대출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았는데 지금은 가계 빚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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