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매경데스크] 신문에 쓰면 우스워지는 것들

입력 2022/07/01 00:08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누구도 私用해선 안 되는 신문
'농담'은 사양합니다
57631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오피니언면 편집을 하면서 좋은 일 중 한 가지는 외부 전문가의 글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론 가끔은 한국 엘리트의 수준을 걱정하게 되는 날도 있다.

어느 교육자가 자기 아내를 존경한다는 글을 보내왔다. 유학 시절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신도 공부해 학위를 따고 지금은 학계의 권위자가 된 성공 스토리다. 그가 아내를 존경하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됐지만 나는 그 원고를 돌려보냈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역시 현직 교수인 아내를 존경받을 사람으로 신문을 통해 칭찬하는 것이 공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꽤 잘 쓰인 글이었는데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부치길 권한다.

지방 대학 총장이 최근 그 대학에 거액을 기부한 지역 사업가를 위인 수준으로 묘사한 칼럼을 보내왔다.


물론 쓸 만한 인물이어서 쓴 것이겠지만 기부받은 사람이 기부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어색하다. 전화를 걸어 그 어색함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원고를 돌려보냈다. 부디 그 원고를 사업가에게 부치길 바란다.

경제부처 공무원 출신의 공사 사장이 있다. 그는 프랑스 주재관으로 3년을 근무해 현지 언어와 문화에 조예가 깊은 듯했다. 프랑스에서 먹고 마신 얘기를 두 번 써보내왔는데 두 번째는 원고량이 많이 넘쳤다. 원고 중 '아는 척' 내지는 '과잉'에 해당하는 부분을 걷어내고 내보냈더니 아랫사람을 시켜 '남은 회차 원고는 쓰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기분이 상한 것이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와인 마시고 요리 먹은 것이 선망의 대상이나 정보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좀 삐딱한 독자라면 '주재관이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즐긴 얘기만…. 국가를 위해 뛴 에피소드는 없나' 하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공직자는 그런 시선도 생각해야 한다.

어느 명문대 교수가 원고를 보내올 때마다 겁이 더럭 났다. 7매 분량 원고 중 단 한 문장도 손보지 않고 내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구글번역기로 돌린 글과 외계어의 중간쯤에 있을 성싶은 그런 문장이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닐 것이라는 심증으로 이력을 보니 국내 대학에서 학사를 했다.


전공은 문과계열이다. 도대체 한국어와 그렇게까지 척져야 할 이유가 없는 이력인 것이다.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조교에게 물었다. "교수님께서 원고를 직접 쓰시는 건 아니지요?" 펄쩍 뛴다. 직접 쓴다는 것이다. 문장력은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대학교수이고 대외 강연까지 활발한 것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교수는 문장력이 필수인 직업이다.

예를 든 4개 사례 중 앞의 3개는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고 마지막은 표현력이 문제가 된 경우다. 오피니언면 편집자로서 넷 중 한 명을 필자로 고르라면 나는 '외계어'를 구사하는 교수를 택하겠다. 문장을 다 뜯어고쳐야 할지언정 지식인이 쓸 만한 주제였기 때문인데 실제 그의 원고는 반송된 적이 없다. 다른 3명은 신문에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사용(私用)해서는 안 된다. 고생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의 학문적 성취를 자랑하는 것은 사용이다. 자기 학교에 기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사용의 오해를 산다. 공직을 오래 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맛본 미식 경험을 뽐내는 것이 큰 흉은 아니다. 다만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은 먹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더 공적인 메시지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오피니언 리더 중에 글을 아주 못 쓰는 사람은 드물다. 문장은 나쁘지 않은데 신문 독자에 대한 예의에 둔감한 사람들은 그보다 좀 더 많다. 그런 글이 나가면 다른 누구보다 본인에게 누가 될 수 있다. 그런 일을 막으라고 신문사는 편집자를 두고 나는 월급을 받는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