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매경데스크] 부산엑스포 유치의 길

입력 2022/08/08 00:07
프랑스 지지 받아낸 사우디
오일머니 앞세워 파상 공세

회원국 붙잡을 협력방안 찾고
韓기업 활동 반경 넓혀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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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얘기다. 지지율 추락과 경제 복합 위기 상황에 흔들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놓쳐서는 안될 절호의 기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경제효과가 최대 17조원으로 추산됐던 점을 감안할 때 2030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차원이 다른 초대형 이벤트다. 5년 주기로 개최되는 등록박람회여서 최장 6개월간 진행되며, 개최국은 용지만 제공하고 엑스포 참가국들이 자국 경비로 전시관을 건설하게 된다. 인정박람회였던 대전엑스포(1993년)나 여수엑스포(2012년)와는 위상 자체가 다르다.

정부가 엑스포 유치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도전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판세가 만만치 않다. 경쟁에 뛰어든 사우디아라비아가 초반 선취점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공격의 선봉장은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가 맡았다. 7월 마지막 주에 프랑스를 방문하더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를 단숨에 받아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본부를 둔 프랑스가 사우디의 손을 너무 일찍 들어줌으로써 유럽과 아프리카 회원국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 박람회 전문가는 "엑스포 유치를 염원하는 한국으로선 충격적인 일"이라며 "정부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치 활동의 민간 구심점인 대한상의가 대응 전략을 담은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한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다. 사우디는 프랑스 무기 구매 1위국이다. 또한 사우디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프랑스 기업 참여를 유인책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로선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는 데도 사우디와의 에너지 협력이 절실하다. 빈 살만은 프랑스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해 지지를 끌어낸 셈이다. 사우디는 그리스와 인도네시아의 지지도 얻어냈다. 역시 탄탄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타진한 게 먹혀들었다.

초반 열세에 놓인 한국이 강력한 경쟁 상대 사우디를 넘어서려면 우리가 가진 국가 역량을 최대한 결집해야 한다.


170개 BIE 회원국들을 사로잡을 협력 의제를 파악해 전략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사업 역량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어떨까. 기업의 활동 반경을 한층 넓혀주는 차원이다. 예를 들어 삼성·롯데 등 기업인 사면복권의 명분으로 엑스포 유치를 내걸어 해당 기업들이 더욱 사명감을 갖고 뛰게 만든다면 대한민국 국익을 키우는 길이 될 수 있다.

사실 한국 경영자들이 보석 같은 활약을 해준 전례가 많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말 특별사면을 받은 이 회장은 동계올림픽을 성사시켜달라는 국가의 요청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었던 그는 타국 IOC 위원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사로잡을지 고심했다. 한 번은 아프리카의 여성 IOC 위원과 만찬을 했다. 이 회장은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 여성에게 배냇저고리와 태교음악이 담긴 CD를 건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든 IOC 위원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기업 특유의 치밀한 정보전이 통한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전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정 회장은 현지 인맥이 탄탄한 현대차·기아 딜러들을 총동원해 각국 투표권자들을 밀착 마크하면서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분투했다.

고물가, 에너지 대란, 경기 하강 충격이 한데 얽힌 글로벌 복합 위기로 세계가 어수선하다. 사방에 악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엑스포 유치만 한 국부 창출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유치 성공의 가장 큰 동력은 국민적 성원이다. 개최 도시 부산을 비롯해 전 국민이 뜨거운 단합 열기를 보여줄 때 BIE 회원국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한국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다시 왔다.

[황인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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