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갈등, 성장, 그리고 기업 [손현덕 칼럼]

입력 2022/08/11 00:07
수정 2022/08/11 00:11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
그러려면 경제성장이 필수
그 몫은 기업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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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모습인지…. 파란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바지. 차이라면 이번엔 귀밑 부분이 살짝 보일 정도로 조금 짧게 커트한 은백색의 단발머리.

지난달 19일 용산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2018년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에서도 그는 같은 헤어스타일에 같은 옷차림새였다. 연단에 올라가 정해진 시간 1분도 어기지 않고 원고에 적힌 그대로 읽었다. 옐런 스타일. 비행기를 탈 때는 늘 공항에 3시간 먼저 도착할 정도의 준비성. 국내선인데도.

윤 대통령과 대화를 하면서 그가 10페이지는 족히 넘을 A4용지를 넘기면서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난 웃음이 나왔다. "사람 쉽게 안 변해."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 옐런 장관이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뭐냐고 물은 건 다소 뜬금없어 보였다. 못할 거야 없지만 옆길로 새는 질문이다. 옐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더더욱 미국 재무장관이 한국 대통령을 예방한 목적에선 비켜났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름 명쾌한 논리의 답변을 내놓았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해소이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 것이고 그 근본에 기업이 있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왜 성장이 필요하지"라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흔히 갈등 하면 그 앞에 기계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는 '사회적'이라는 말이고 갈등의 종류도 이념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종교갈등, 젠더갈등 등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 갈등의 뿌리는 경제문제다. 배가 아프든 배가 고프든 내가 지금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생기는 현상이다. 국무총리실 차장으로 공직을 그만두고 갈등 문제에 천착해온 박철곤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장이 2년 전 세계지식포럼에서 '위기에 선 대한민국 공동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러 갈등 중 가장 심각한 건 빈부갈등이란 결론이었다. 심각성이 10점 만점에 7점으로 가장 높았다.


빈부갈등은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건 경제학적으로는 상식적 명제이며 과학적으로는 검증된 사실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작년 12월 '중성장전략과 기업정책'이란 제목으로 국회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상식이고 과학이다(4월6일자 손현덕칼럼 참조).

국가 간 비교를 하자면 한국은 갈등이 심한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갈등)지수가 이를 입증한다. 누구든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랄 것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이 경제 성장을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 성장을 하지 않으면 파이가 줄어들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가진 자는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갈등 구조가 심화된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성장을 이끄는 건 기업이다. 다른 경제주체인 가계의 소비나 정부의 지출은 성장에 후행(後行)한다. 대통령 취임사도 그랬다. 저성장으로 인한 갈등의 증폭을 언급하면서 사회 갈등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했다. 해법은 빠른 성장. 즉, 경제적 성장이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그 정신하에 기업 중시란 정책기조가 도출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이 직면한 현실은 다르다. 말로는 기업, 기업인 하면서 실제로는 기업 활동을 옥죄고 기업인을 범죄인 취급하는 이중성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마침 엊그제 법무부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주요 경제인을 포함해 심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모쪼록 이번 특사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기업이 갈등을 해소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 지지율을 고려해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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