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칼럼

[필동정담] '기생충' 반지하의 비극

입력 2022/08/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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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빗물을 통해 우리 사회 빈부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지대 근사한 대저택 정원을 우아하게 적셨던 폭우는 계단을 타고 저지대 반지하에 사는 기택 집을 사정없이 덮쳤다. 비가 내렸을 뿐인데도 세간살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며 삶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지난 8일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반지하에 살던 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건물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갑자기 물이 천장까지 차오르면서 반지하에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 함께 살던 이모는 문을 열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혹했다.

지난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서수의 단편 '미조의 시대' 역시 반지하를 배경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촘촘하게 추적한다.


보증금 5000만원에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전세는 창문만 열어도 행인들 발에 치일 것 같은 6평짜리 반지하가 유일했다.

BBC 등 외신은 '반지하'라는 말을 그대로 영어로 'banjiha'라고 쓴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많은 주거 형태라는 얘기다. 반지하는 당초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70년 정부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등의 주택을 신축할 때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전시에 방공호 등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198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폭증하면서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울에서 20만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로 아래에 위치한 반지하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언젠가 사라져야 할 주거 환경이다. 서울시는 10일 건축법을 개정해 반지하 거주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만 가장 저렴한 형태의 주거지인 반지하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있느냐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반지하의 비극을 끝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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