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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시평] 원격수업이 교육 질 떨어뜨린다고요?

입력 2020.06.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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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학생 상호작용 가능한
원격수업 인원은 19명 이하
문제해결 위한 토론 가능케
혁신적인 교육모델 고민을
생전의 스티브 잡스는 재택근무에 회의적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와 지나가듯 나눈 대화가 오랜 문제에 실마리를 주기도 하고, 장문의 보고서 대신 몇 마디의 대화로 업무협의가 끝나기도 하니까. 그래서 서로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도록 동선을 설계하게 했다. 2년 전 세계 60여 개 대학 총장들의 회의에서 어떤 유럽 대학 총장은, 상이한 영역의 연구자들이 '협업할 수밖에 없도록' 대학의 연구실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섞으면' 일상적인 업무 효율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생소한 분야의 연구자들끼리 친해져서 주말 산행을 하기도 하고 혁신적인 협력 연구를 시작하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갑자기 몰아친 코로나19로 모든 게 바뀌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번 왔다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네 이웃이 될 모양이다.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있고, 트위터 같은 회사는 평생 재택근무도 허용하기로 했다. 전 세계의 학교가 원격수업을 시작했지만, 교육의 질이 낮아질 거라는 추측이 많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뉴욕타임스 등에서 나온 분석 기사는, 원격 수업에는 소통의 비언어적 측면이 빠져 있다는, 인지과학적 측면의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말 교육의 질이 낮아졌다면 국가적 문제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아닌가. 우리가 원격수업을 뭔가 잘못 운영하는 건 아닐까? 반례는 꽤 있다. 2013년 프랑스에 설립된 에콜42는 실제 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기술과제를 팀 프로젝트로 해결하게 한다. 학생들은 필요한 지식을 온라인에서 얻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졸업생들을 모셔가기 위해 줄을 선다. 미네르바 대학의 학생들은 전통적 방식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에 비해 비판적 사고나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기업들의 만족도도 높다. 수업은 19명 이내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실시간 화상으로 진행된다.


교수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수업의 핵심이고 프로젝트 등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 해결에 도전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이버대학이나 MOOC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각 학생이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이나 수업 참여 정도는 모두 인공지능 방식의 시스템으로 분석되고 평가되어 교수에게 제공된다. 한 학기 동안 특정 학생의 비판적 사고나 문제해결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지도 시스템이 추적한다. 이런 개별화된 평가와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마지노선은 19명이다. 대부분의 일반 대학 수업은 이 규모를 넘으니 실시간 화상 수업의 장점을 잃어버린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은 내년 여름까지 전면 온라인 수업을 결정했다. 우리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블렌디드 러닝의 구체안을 준비해야 한다. 원격수업의 두 방식, 즉 사전 제작한 동영상을 올리거나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면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혼합한 협력 강의 방식을 설계해 볼 수 있다.


만약 60명이 매주 2회 수강하는 과목이라면, 교수 한 명이 1회 강의 동영상을 제작해서 60명이 모두 보게 하고, 2회 수업은 20명씩 구성된 분반 하나를 동일 교수가 맡아 대면 또는 실시간 화상으로 수업한다. 다른 교수는 나머지 2개 분반의 2회차 수업을 대면 또는 실시간 화상으로 진행한다. 결국 학생들과 두 교수 모두 주 2회의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1회차 동영상 강의는 외부 MOOC 강의로 대체해도 무방하고, 밀집도를 높여서 지식 전달을 대부분 소화하면 좋다. 정말 중요한 2회차 대면 수업이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

원격수업 덕분에 문제 해결형 수업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제는 익숙함과 결별하고, 에콜42나 미네르바보다 더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박형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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