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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기고] 분단국의 현실 '힘 있는 안보'가 필요하다

입력 2020.06.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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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신예 전투기가 핵 시설이 있다고 의심되는 북한 영변 지역에 폭격을 단행한다. 남북 간 공방전으로 한반도 중부 지방은 삽시간에 초토화된다. 북한은 생화학 무기를 동원하고, 서울은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당한다."

소설 속 내용이 아니다. 1994년 북한의 핵 개발 의혹으로 전쟁위기설이 불거졌을 때 미국이 세운 북한 선제공격 시나리오 내용 일부다. '작전계획 5027'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작성하며 1~2년마다 개정판이 나온다. 9·11테러 직후 작성된 2002년판에는 미국의 신안보 독트린에 따라 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기습적으로 북한을 공습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미국은 서울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엄청난 재앙을 예상하면서도 이 작전을 실행하려 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백악관에서 결정되고 시작됐다면, 끔찍한 일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남북 간 정상이 평화를 약속해도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간 상호작용의 귀결이 곧바로 전쟁 회피를 보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냉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할 안보적 사항이다. 국제 정치에서는 설령 평화적 합의가 당사국 간에 이뤄져도 그 합의의 이행은 결국 국제적 역학관계로 인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불신은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다. 실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과 혼란의 시초는 상호 불신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남북은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철수와 유해 공동 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상호 신뢰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를 진행했다. 그러나 지금 남북은 위기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한다고 밝혔지만, 북한에서는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나왔다. 저강도 위협 등으로 남북한 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으며, 상호 신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남북 문제에도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가 제시한 '애로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기대하는 보편적 정보에서 차이가 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뜻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초래해 자칫 그릇된 판단을 이끄는 역선택을 낳을 수 있다. 남북과 미국 역시 얼마든지 그 같은 역설에 빠질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원래 어려운 남북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북한의 핵 문제와 국제 정치적 현실은 예측하기 힘들고 냉혹하다.

우리의 분명한 소망은 남북 간 불안한 대치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지만, 국민 여론은 분분하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정치적 구조에서 국론 통일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평화 실현의 제약을 극복해야 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은 이념적 갈등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고 열정의 분출은 가급적 이성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것은 우리 다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힘을 바탕으로 한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국가 권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으로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꼽았다.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안보적 패러다임이다. 한 눈으로 보는 안보는 꿈이며 환상이다.

[이만종 호원대 교수·한국테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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