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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춘추] 명예살인과 트렁크살인

입력 2020.07.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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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 명예를 '실추시킨' 구성원을 다른 가족이 살해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대체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남성 가족원에 의해 저질러지는데, 배우자 외 이성과의 성관계, 부모가 정해주는 조혼(早婚) 거부, 가족 종교 배척이나 다른 종교로 귀의 등 이유가 다양하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5000명 내외 희생자가 매년 발생하고, 중동뿐만 아니라 미국·영국 이민사회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해 미국 드라마에서도 가끔 명예살인이 소재로 다뤄진다. 영어 공부를 위해 학생들에게 미드·영드 시청을 권하는 입장에서 명예살인을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나 드라마 소재로 치부해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식 살해'와 아동학대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 때문이다.


명예살인과 자식 살해는 부모가 낳아줬으니 부모 마음대로 생사여탈(生死與奪)을 할 수 있고, '사람 되라'고 체벌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부모 소유라고 여겨도 무방하다는 태도가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영아 살해 10여 건을 포함해 연간 30~40건의 자식 살해가 벌어진다. 아동학대도 연간 2만4604건이 신고된다. 문제는 학대받은 아동들이 가해자인 부모로부터 분리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대 부모의 손에 남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많이 불리는 우리 동요 가운데 '섬아기'가 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라는 노랫말이다. 논리를 단순화한다면, 미국에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제도는 아동을 제대로 건사할 사람이 반드시 친부모여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웃의 신고 등으로 아동은 부모로부터 격리돼 위탁가정에 보내질 수 있다. 재판에서 좋은 부모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부모는 친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우리도 아동학대처벌법이 있어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는 '원가정 보호 지속'이 2018년 기준 82%나 된다. 학대받은 후에도 가해자 부모와 살 수밖에 없는 피해 아동은 부모의 방기와 무관심, 변덕, 폭력에 내맡겨진 채 죽음까지 두려워해야 한다.

훈육이라는 미명 아래 좁은 트렁크에 감금돼 죽어가던 아홉 살배기의 거친 숨, 쇠사슬로 목이 묶인 채 달군 쇠젓가락을 들고 다가오는 부모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아이의 공포, 컴컴한 침대에서 개 목줄을 차고 사흘을 굶은 채 어른들의 왁자지껄한 술판 소음을 들으며 아이가 삼켜야 했을 굶주림.

그런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였을까. 명예살인이라는 명목 아래 죽음당하는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조국과는 달랐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세계 일류를 자임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그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외면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일까.

[정호정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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