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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책과 미래] 시민 국가에 國父는 필요 없다

입력 2020.08.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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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또다시 국부(國父) 논란이 벌어졌다. 국부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문답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분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중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국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나라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이다. 둘째는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이다. 이 순서에는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우선, 국부라는 말은 왕조 시대의 흔적이다. 북한 체제를 보면 알듯이, 이 말에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君師父一體)'라는 봉건적 사고방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나라님이 없다. 국가의 주인은 시민이다. 우리한테 이런 의미의 국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부라는 말은 완전히 무의미하다.


물론, 둘째 뜻처럼 건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여러 시민들한테 존경을 표하려고 이 말을 빌려 쓸 수 있다.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등을 묶어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는 호칭을 붙여 준 미국처럼 말이다. 이럴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국부가 한 사람일 까닭은 별로 없다. 김구든, 김창숙이든, 여운형이든, 이승만이든, 조소앙이든,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분들은 모두 국부로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60명 가까이 된다.

그러나 국부는 남녀평등에 바탕을 둔 시민 민주주의 국가에 더 이상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다. 둘째 뜻으로 쓸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첫째 뜻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기독교 가부장제의 유산이듯, 이 말은 아무리 세탁해도 유교 가부장제의 잔재일 뿐이다. 국부를 어떻게든 한 사람으로 호명해 보려는 이상한 집착도 여기에서 연원한다.


임금은 둘 있을 수 없으니까.

근본적으로 물어보자. 북한 같은 왕조 국가도 아닌데 시민 국가에 왜 아버지가 필요한가? 이승만이든, 김구든, 다른 누구든, '아바이'가 아니라 평등한 한 사람 시민일 뿐이다. 유재원의 '데모크라티아'(한겨레출판)에 따르면, 민주정은 모든 시민들 사이의 완전한 동등성(isotes) 위에 서 있다. 공적 영역에서 누구나 왕 없이, 아버지 없이, 주인 없이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러한 체제에 왜 '나라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가부장이 필요 없다. 한 시민을 존경할지라도, 아버지로 부르고 싶지 않다. 민주국가에서 왕조 시대 사유에 갇혀 허우적대는 건 그만 보고 싶다. 국부(國父)는 없다. 집안에는 아버지가 있을지 몰라도, 시민한테는 아버지가 있을 수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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