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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밀레니얼 시각] 새로운 격차의 시대

입력 2020.08.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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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력'따라 여행 등 경험달라
취향의 격차가 삶의 격차로

저녁없는 빠듯한 사람은
다양한 삶 엿볼 기회 막혀
여력은 격차가 된다. 사람은 여력이 없으면 안전한 것을 주로 찾는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주말 하루밖에 없다면, 필사적으로 그 시간에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고자 한다. 새로운 장소나 새로운 일은 만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 만족이 보장되는 곳을 자연스럽게 다시 찾게 된다. 한 달에 영화 한 편밖에 볼 수 없다면, 내가 만족감을 느낄 게 거의 확실한 종류의 영화를 찾는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저녁이 여유로운 사람은 다양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과정은 그 자체로 취향의 계발 과정이 된다. 어디든 떠나도 좋은 주말이 자주 보장되는 사람에게 매 주말은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쉴 시간이 하루에 세 시간밖에 없는 사람은 그 시간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미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를 보겠지만, 하루 대여섯 시간 여유가 보장되는 사람은 체력을 보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자기관리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 격차란 그런 식으로 형성되고 있다. 애초에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주말마저 일에 빼앗기는 사람은 반복해서 자기에게 쾌락을 주었던 안전한 것만을 다시 찾게 된다. 늘 보던 것과 비슷한 드라마, 늘 마시던 맥주, 늘 가던 식당, 늘 가던 곳이 그에게 안정적으로 위로를 줄 수 있다. 혹시라도 그 절실한 하루나 한 시간을 다른 데 투자했다가 빼앗기고, 실망하고, 낭비할 것이 두려워서,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삶의 루틴을 반복한다. 그러나 여력이 있는 사람은 도전을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삶의 다른 가능성을 자유로이 찾아간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글쓰기 클래스를 찾아다니며 작가가 된다. 요리나 커피를 배워 제2의 인생을 도모하고, 운동을 하며 더 나은 체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근래에는 기존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제2의 인생을 맞이하는 사례를 참으로 많이 접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유튜브를 찍어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다양한 자격증과 능력을 가지고 여러 일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덧 직업은 단일한 게 아니게 됐는데, 돈을 버는 직업과 자아실현을 따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누군가에게 행운을 주고, 기회가 열려 있고, 다양성의 축제가 되는 시대란 그만 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영화평론가, 카페를 운영하는 변호사, 에세이 쓰는 의사, 유튜브 하는 공무원은 그렇게 그들이 가진 문화자본에 뿌리내리고 있는데, 이런 자본은 문화적 경험을 축적해내는 여력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여력이 있어도 자기 문화자본을 쌓아 올린다든지, 제2의 직업적 능력을 계발하거나, 제2의 인생을 도모하는 데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력이 문화적 격차, 그를 통한 라이프스타일 자체의 격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못한다. 과거에 격차란 주로 명품 가방, 자동차, 아파트 평수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대변됐고, 누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적게 벌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느냐 마느냐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 풍요의 시대, 다양성과 창조성의 시대에 격차란 그렇게 자기 삶을 창작해내고, 다채롭게 만들고, 새로운 경험으로 이끄는 일 속에 자리 잡게 됐다.

새로운 시대의 가장 부럽고도 상향화된 경험들은 그렇게 자기 삶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런 삶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등에 전시하고, 실제로도 더 황홀한 '삶의 기분'을 얻는 데 있다. 어쩌면 이러한 격차야말로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격차일지도 모른다. 여력이 있는 사람은 더 넓은 삶을 더 제대로 살 줄 알게 돼간다. 그러나 여력 없이 안전에 머무는 삶은 평생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여력은 창조성의 격차, 취향의 격차, 삶의 넓이에 대한 격차가 되고 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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