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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춘추] 만주와 이스라엘

입력 2020.08.0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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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주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면 한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는 러시아와 만주로 북상하는 일본은 1904년 아시아의 패권을 정하는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청을 깨고 설치는 극동의 조그만 섬나라를 혼내주고 만주와 조선을 장악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제정 러시아 황제는 세계 최강이라는 발틱함대를 극동으로 파견한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제 조선을 발판으로 만주로 가야 하는데 북극곰이 버티고 있으니 대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이미 임진왜란 때부터 서구 총포술과 조선술을 배워 과학기술의 내공이 상승해 있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돌아오는 발틱함대는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고 대한해협 앞바다에서 세계가 보는 앞에서 발틱함대를 처참하게 침몰시켜 버린다. 발틱함대 사령관이 중상을 입고 포로로 잡히고 총 37척의 함대 중 19척이 격침된다.


러시아 함대는 뿔뿔이 각자도생해 3척만 무사히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하고 어떤 함선은 왔던 그 먼 길을 다시 돌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러일전쟁은 산업혁명 이후 동양인이 서구 백인을 이긴 세계 최초의 사건으로 유럽과 미국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 갔을 때 러시아 가정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그 집 주인과 아들은 러일전쟁에 대해서 얘기했다. 러시아 함대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갔기 때문에 이미 함대의 전투력이 많이 손상됐고, 숙적 영국이 개입됐을 뿐 아니라, 선원과 병력 대부분이 죄수들로 충원돼 황제에게 충성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전쟁이었다고….

그런데 나에게 더 놀랍게 다가왔던 것은 러일전쟁 당시 전쟁비용의 40%를 월스트리트 유대인인 제이컵 시프가 조달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유대인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 자본이 일본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은 유대 자본의 위력을 실감하고 유대인이 시오니즘을 따라 이스라엘을 건국할 땅을 찾고 있을 때 만주국 내 한 지역을 주기로 하고 유대인과 교섭에 들어갔는데, 이 작전의 이름이 후구계획(河豚, 복어)이다.

왜 복어계획이라 했을까. 복어는 독이 있다. 복어를 회로 뜬 복사시미는 고급 요리지만 잘못 먹으면 죽는다. 유대 자본은 복어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총리까지 나섰던 이 계획은 일본이 독일과 동맹을 맺으면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흔적은 블라디보스토크 북방 2시간 정도 거리에 비로비잔이라는 유대인 자치구로 조그맣게 남아 있다. 그렇지만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깨어나기도 전에 한반도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

[박장호 서울대 치의학 대학원 산학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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