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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무늬만 호봉제 폐지 안된다

입력 2020.09.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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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입김에 자체 개혁 어려워
임금체계 개편한 공공기관에
인건비 인상 등 혜택 주고
공무원은 부처별 직무급제를
지금 우리 노동시장에 가장 필요한 개혁은 무엇일까.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41개국 중 13위인데 임금의 유연성은 84위다. 고용 유연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임금 유연성이다. 임금이 유연해지면 고용도 늘어난다.

호봉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호봉제로 인해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되고, 고령자는 내보내려 한다. 호봉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근로 의욕에도 부정적이다. 장차 필요하게 될 정년연장에도 호봉제는 큰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아직 호봉제를 유지하는 민간 기업이 59%나 된다. 특히 노조 있는 기업은 호봉제 비중이 높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은 대부분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중엔 직무급을 도입한 곳이 더러 있으나 대부분 무늬만이며 사실상 호봉제인 경우가 많다.


연초만 해도 고용노동부는 기업에 임금체계 컨설팅비를 지원하는 등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는 듯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금융권의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고, 기획재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직무급제 도입을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공무원의 호봉제 폐지는 의제화되지 않았으나 인사혁신처도 작년에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노조의 반대 때문인지 최근 정부의 추진력이 약화된 느낌이다. 고용부는 직무급제 전환을 노사 자율에 맡긴다는데 정부가 손을 놓겠다는 뜻은 아니길 바란다. 기획재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이 있기는 하나 그 추진 전략은 공감대 확산, 정보 제공에 그치고 있다. 월별 추진 계획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찾을 수 없다. 현 정부가 직무급제를 정말 추진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임금체계 개편은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개혁이다.


이를 위해선 공공기관, 공무원, 민간기업에 차별화된 더 강력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기관 중 호봉제 유지 기관의 인건비 인상률은 최소한으로 하고, 호봉제 요소를 탈색할수록 인건비 인상률을 더 높여주자. 기관별 임금체계의 호봉제적 요소를 측정하는 방법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임금체계 지표에 직무급 도입을 반영하는 정도로는 약하다. 경영평가 성과급은 일회성이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평생을 가기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기관에 인건비를 더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는다. 장차 공공부문의 정년이 연장돼도 호봉제 유지 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도 천명하자.

둘째, 공무원 조직은 부처별로 나누어 직무급제를 도입하자. 지금은 모든 중앙부처 공무원이 단일 임금체계를 적용받고 있어 공무원 조직에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항공모함을 유턴시키는 것처럼 어렵게 돼 있다. 부처별로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자. 그리고 기존의 호봉제 외에 새로운 직무급제를 개발해 각 부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자. 물론 직무급제가 더 유리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호봉제를 고수하는 X부처가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공무원 조직의 임금체계를 일괄적으로 바꾸려 하면 결국 그런 X부처 때문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셋째, 민간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경우 호봉제 폐지를 조건으로 걸자. 혈세를 쓰는 정부 지원은 생산성 향상 조건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호봉제 폐지다. 그러나 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기업에 호봉제 폐지를 요구할 동기가 없다. 청와대나 국무조정실의 조정 역할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필요한 개혁을 미루는 핑계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를 개혁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박진 객원논설위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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