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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기고] 美 '화웨이 죽이기' 틈새에 낀 한국의 전략

입력 2020.09.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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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가 15일부터 시작됐다. 화웨이에 공급되는 제품의 일부가 미국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해 생산됐다면 미 상무부의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하는 초강도 규제다. 이 같은 전례 없던 제재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피해가 최소화될지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미·중 갈등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웨이 갈등이 단기적인 이슈라면 소나기만 피한다는 심정으로 대처하면 되겠지만, 앞으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면 이 기회에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화웨이 규제의 이면에는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요소가 있으며, 더 깊게 들어가면 분리주의와 반세계화, 그리고 디지털 기술패권주의가 저변에 깔려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진행돼 온 자국우선주의는 자유무역의 역행을 가져왔으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첨단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심리적 두려움(일자리 감소 등)은 정치와 기술패권주의의 결합을 초래했다. 2014년의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2016년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적 갈등으로 유발된 불화수소 수출 제한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식량과 에너지가 주요 안보 이슈였으나,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분리주의와 결합된 핵심 기술의 정치적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미·중 갈등을 소나기로 보지 말고 앞으로 되풀이될 주기적 장마로 인지하고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지율 접전 중인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미·중 무역갈등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성급한 입장 표명으로 후폭풍을 가져올 도박을 할 이유는 없다. 민관 합동조사나 다양한 법률 검토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국가의 공식적 입장 표명을 늦추며 개별 기업의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앞으로 반복될 유사한 이슈에 일관되게 대응할 수 있는 명분과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논리와 원칙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정치적 갈등이 감정적 대응을 유발하는 만큼 우리나라는 어떠한 원칙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명분을 강조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새 프레임 제시가 필요하다.

셋째, 기술안보 차원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바라봐야 한다. 기술패권주의 시대에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자생력이 확보돼야 한다. 당장 상업성이 없어 본격적인 양산을 하지 않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스케일업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연구개발을 통해 과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다변화 전략을 통해 기술리스크 관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리스크 관리는 금융이나 원자재 위주였지만, 이제 핵심 기술도 무기화될 수 있어 국가뿐 아니라 기업도 적극적으로 기술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제한이라는 예방주사를 맞았다. 미·중 갈등을 길게 내다보고 대비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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