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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모든 '뒤처진 새'에 위로를

입력 2020.09.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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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동안 편지 주고받았던
獨스승 라이너 쿤체 시인
'남들과 발맞추지 못하는'
불안한 맘 토닥여주며 응원
지구를 휩쓰는 질병으로 사람들 사이의 길이 많이 끊기고, 하늘길마저 닫혀버린 듯한 시절이 가고 있다. 일 년에 보통 네댓 차례는 독일에 가곤 하는데 금년에는 모든 행사가 연기를 거듭하다가 어떤 것은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어떤 일로 가든 넓은 독일을 거의 한 바퀴씩 돌아 잠깐씩 찾아 뵙고 오는 어른들이 있다. 연로하신 분들을 만나는 기회는 놓치거나 미루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뵙고 그 지혜를 조금이나마 더 배우고 싶고, 또 그런 어른들이 세상에 계시다는 게 그저 너무 고마워서 저절로 발길이 옮겨지기도 한다. 지금은 이곳저곳에 가끔씩 안부 전화나 드린다.

얼마 전에는 나를 아껴주시는 스승의 생신이었는데, 여행 일정이 있었기에 그때 찾아뵙는다 생각하고 있다가 일정이 또 미뤄지는 바람에 당일에야 제법 긴 편지 한 장을 공들여 써서 팩스에 넣었다. 긴 편지를 쓰다 보니 안부만 쓴 게 아니고, 어느 행간에서인가 나의 개인적인 어려움이 조금 비쳐 나왔던 모양이다.


수신인이 사람의 마음에, 특히 어려움에 누구보다 눈 밝은 시인이라 그분 눈에나 보였을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존경하는 시인의, 아마도 그리 여러 번 남지는 않았을 생신이라 축하 인사가 쇄도했을 것이고 행사도 많았는데 그 와중에 당일에 곧바로 답이 왔다. '뒤처진 새'라는 제목의 짧은 당신 시 한 편을 옮겨 적고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인 글이었다.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 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오늘 새가 팩스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몹시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라이너 쿤체."

천 마디를 갈음하는 위로의 말이었다. 시인 스스로가 어려서부터 몹시 병약했고 "남들과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분이다.


지금도 작은 체구에, 불면 꺼질 듯 몸 가벼우신데 그 남은 힘마저 누군가에게 보태시겠단다. 그 가벼운 몸에 깃든 정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강함은 비할 데 없이 도저(到底)하다. 진정한 시인이란 아마 본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시 '뒤처진 새'는, 아마도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될 듯한 근작 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번역할 때 추가로 보내주셔서 독일의 원문 시집에는 들어있지 않은 시 한 편이 한국어 번역에는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일부러 시 한 편을 따로 보내주신 것은, 유난히 경쟁이 치열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이 많이 마모되는 한국의 상황까지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시집이 나오고 신기한 일을 겪었다. 시를 읽는 사람이 아주 많을 수야 없지만, 읽으신 분들은 아낄 수밖에 없는 그 시집 중에서도 유난히 그 시 '뒤처진 새'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언급하는 것이었다. 어디 한 단어 꾸며낸 미문이 없는 시인데 그랬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절감했다.


라이너 쿤체 시인은 내가 평생을 찾다가 쉰다섯 살이 되어서야 만난 스승이고, 그때부터는 오래 긴 편지가 오가고 있다. 나는 겨우 가끔씩 편지를 보내는데 선생님은 늘 지극정성의 긴 답을 주신다. 그렇게 십오 년이 가면서 쌓인 편지 더미는 엄청난데, 위의 글은 그중 가장 짧은 글이다. 그러나 그 어느 장문 못지않게 힘 있는 글이어서, 내가 이즈음 이런저런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견뎌내는 것은, 또 앞으로도 견뎌갈 수밖에 없는 것은 먼 도나우 강가에 서서 나를 그 "뒤처진 새"로 반기며 힘주시는 분의 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귀한 글을 주고도 모자라서, 나의 팩스기에서는 내가 미처 답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짧은 답만 쓴 걸 미안해하는 글이 세 차례나 더 나왔다. 이곳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그곳은 타들어가도록 메말랐을 때인데, 물마저 귀하지만 언제든 내가 오면 마실 물은 비축해 두었다고도 쓰셨다. 시인이란 그런 사람이다.


그런 분의 글을 읽고 내가 어찌 함부로 살겠는가. 워낙 약하신 분이라 이만큼 버텨주시는 것도 너무 고맙지만, 이런 귀한 분들이 정말이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땅덩이 위에 계셔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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