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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한글의 영광 있게 한 노고를 기린다

입력 2020.10.17 00:08   수정 2020.10.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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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훈민정음 후폭풍 우려
수시로 자녀 집에서 비밀 작업
30년전 국립국어원 신설로
한국 어문정책 이정표 세워
과학화·세계화로 보답해야
10월은 한글날이 있는 문화의 달이다. 말과 글은 민족 문화의 뿌리이자 사고의 틀이다. 한국인이 한국인답게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삶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은덕(恩德)이다. 청나라를 건설한 만주족은 나라 멸망 100여 년 후 만주어와 함께 거의 사라졌다. 자기 언어를 잃은 민족은 소멸한다.

조선 초기에는 몽골제국 부마국인 고려왕조의 문화 전통이 남아 있어 한자, 범자, 파스파, 거란, 여진, 위구르, 티베트, 투르크, 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 글자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절대 음감을 지닌 작곡가이자 음운학에 조예가 깊은 언어학자 세종은 말과 글이 달라 실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 일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 창제를 문자혁명에 비유했고 영국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소문자라고 평했다.


오늘날 과학적인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세종실록은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데 그 글자는 옛날 전자(篆字)를 모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이 홀로 창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방대한 문화사업의 조력자는 없었을까.

작년 말 한영우 교수는 '세종평전-대왕의 진실과 비밀'에서 "섣달 그믐에 두서너 줄로 서둘러 공표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가 불러올지도 모를 후폭풍을 예감한 인상이 짙다. 조선이 독자적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다면 명(明)에 대한 반역으로 오해받을 위험이 커 명나라에 9세인 영종 정통제가 황제로 등극하자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포착한 듯하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열성적으로 몰입했던 시기는 재위 23년 무렵으로 보이고 그 사업은 철저하게 밀실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어 한 교수는 "즉위 23~25년 사이에 눈병과 풍증 등 병이 심하다고 수시로 신하들에게 호소하면서 정의공주와 광평대군 집을 자주 방문하고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 정의공주 남편인 안맹담 집안의 '죽산안씨 대동보'에 정의공주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는데 변음토착(變音吐着)을 풀어내 노비 수백 명을 상으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글 창제에 가장 유망한 조력자는 비밀리에 만날 수 있는 영특한 둘째 딸 정의공주와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추론으로 보인다.

1990년 정초에 신설 문화부는 문교부에서 어문정책과 국립도서관 업무를 이관받았다.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은 취임 며칠 후 '국립국어원' 신설 추진 보도자료 작성을 지시했다. 정부 행정을 전혀 모르는 몽상가 장관이 국립기관 신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일을 벌인다는 쑥덕거림이 있었다. 정부 수립 40년이 지났으나 대한민국은 국립국어원이 없는 나라였다. 나라다운 나라는 국어아카데미가 가장 중요한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계 부처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으나 이 장관의 돌파력과 이연택 총무처 장관의 협조에 힘입어 국립국어원이 1991년 1월 신설됐다. 한국 어문정책의 주춧돌을 놓은 문화사적 쾌거다.

국립국어원은 첫 사업으로 50만 단어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했다. 100만 표제어 개방형지식대사전을 편찬하고 1억 어휘를 목표로 '데이터 댐' 말뭉치 사업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나다전화, 온라인 가나다, 우리말365(카톡)를 개설하여 어문규범, 어법, 국어대사전에 관한 질문에 응답하는 국어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K드라마, K시네마, K팝의 한류 물결로 전 세계에서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꿈인가 생시인가! K팝 수천만 외국 팬들이 한국어로 떼창을 부르고 있다. 문화의 세기에 한글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위한 국립국어원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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