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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중도는 있다

입력 2020.10.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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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극단화로 합의 어려울때
중립적 시각가진 전문가 필요
중도가 회색에 머물러선 곤란
좌우사이 선명한 심판관 돼야
다음 5가지 항목 중 몇 가지에 찬성하시는가? 동성 간 결혼 인정, 지방 분권 강화, 개성공단 재개, 노조 권한 강화, 부동산세 강화. 찬성이 많을수록 진보 혹은 좌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찬성 혹은 반대하는 분도 있겠으나 찬반이 엇갈리는 분도 많을 것이다.

사실 이념이란 극좌(0)와 극우(10) 사이에 무수히 많은 중간값을 갖는다. 이념 위치에 따라 늘 일관된 입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중도(5)는 늘 5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0~10 사이를 오가는데 그 평균이 5인 것이다.

이념의 복잡성을 단순화해주는 것이 정당이다. 개인이 사안마다 분명한 입장을 갖기는 어려우므로 잘 모르거나 모호한 사안은 지지 정당의 주장에 맞추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특정 정당에 대한 애정이 생겨 그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경향이 생긴다.

반대로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가 굳어지면서 상대가 하는 일은 모두 못마땅해진다. 게다가 많은 시민사회단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정당에 극단화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은 타협보다 자신의 선명성을 내세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도적인 유권자라도 한 정당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서 점차 편향성이 강화된다. 이는 정당을 더욱 극단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국 합의 형성은 멀어지고 사회 갈등이 심화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무당층 유권자와 중도적인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당층이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각 정당이 유연해진다. 무당층 유권자는 4·15 총선을 두 달 앞둔 2월 초 25~30%를 오가다 총선 직전에는 18% 선까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들의 낮은 투표율이다. 4·15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가 33.8%였는데 대부분이 무당층일 것이다. 무당층 투표율이 높아져야 정당이 유연해진다.

무당층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는 대체로 이념 또는 정당에 대한 종속이 더 심하다. 지지 정당과 같은 배에 타야 한자리를 한다는 개인적 이해관계까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입장을 정하는 중립적 전문가가 필요하다.


중립적이려면 생각이 중도적이어야 한다. 극단적 이념을 가지고 정파 중립적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도 전문가는 좌우 모두의 적이 된다. 이런 점에서 무당층 유권자가 중도 전문가에게 우군이 돼줄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먼저 중도 전문가의 옥석이 가려져야 한다.

보호색 중도는 좌파 정권에선 좌파로, 우파 정권에서는 우파로 지내는 사람이다. 좌우를 오갔으니 장기적으론 중도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중도가 아니라 변절이다. 중도는 매 시점 중도여야 한다. 중도로 있다가 승자에 발탁된 뒤 승자에 맞춰 색을 칠하는 사람도 비슷한 유형이다. 한편 위장 중도는 중도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한쪽 편만을 드는 사람이다. 중도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래도 꼬리가 길면 밟히게 돼 있다.

회색 중도는 늘 좌우의 기계적 중간에 위치하면서 편한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사람이다. 중도 전문가라면 좌우 한쪽 손을 들어주거나 좌우가 공감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중도는 생산 측면은 우파의 손을, 재분배는 좌파의 손을 들어준다. 그래서 규제 완화와 기업 구조조정을 주장하지만 격차 완화를 위한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지지한다. 대북 정책에서도 우파는 대북 압박을 지지하지만 좌파는 남북 협력을 더 중시한다. 중도는 북한 핵 폐기를 위한 경제 제재는 인정하지만 대북 식량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도는 회색이 아니라 좌우 사이에서 선명한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 끝까지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고 중도적 심판을 이어나가는 전문가를 보고 싶다. 중도는 있다.

[박진 객원논설위원·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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